• 입력 2016.04.18 10:16
동성애 등 성 소수자를 알리는 무지개색 깃발이 걸려 있는 집의 모습이다. 서양에서는 동양에 비해 성적 소수자 등을 대하는 차별적 시선이 조금 덜한 편이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젠 말을 해도 잡아가지 않을 듯하다. 이번 선거의 이슈 가운데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찬반도 있었다. 비록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에서 차별 금지를 외치지만 선거를 눈앞에 둔 우리네 정당에서는 보수적인 종교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각 당의 총대를 멘 주자들이 나와 성소수자 차별을 외치며 나섰고 대표로 욕을 먹어야 했다.

성소수자 차별을 주장하는 대표적 정당은 비례대표 선출을 기원하는 통성기도 동영상이 나돌던 기독자유당이다. 하지만 통성기도는 사후약방문이었다. 선거 전에 했어야 예수님도 손을 쓰셨을 터이나 투표 후의 기도는 주님께 법을 어기고 투표용지 바꿔치기 해달라는 꼴이었다. 주님의 기적이라도 개표소에서는 금지다.

성소수자는 무지개로 자신들의 다양한 색을 표현한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그리고 성전환을 합쳐 LGBT라 한다. 이게 통설대로 군대나 남자학교에서 생긴 문화라면 변태성욕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태생이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타고 났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역사다. 즉 동성애조차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다양해지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8%의 법칙’이 있다. 모든 사람이 각기 8% 내외의 특이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모두 12명이 한 타스를 이룬다는 이론이다. 사냥에서 모두가 오른손으로 창을 들 때 누군가 왼손으로 창을 들어야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모두가 밤에 잠을 잘 때 밤 도깨비마냥 눈을 부라리는 ‘잠 소수자 올빼미’가 망을 봐야 안전하다는 것이며, 모두가 결혼하여 자녀를 가질 때 누군가 다른 길을 걸어야 애들이 더 잘 자란다고 말이다.

우리 주변 대표적인 소수자는 왼손잡이다. 왼빼는 모든 문화권에서 10% 내외로 고르게 나온다. 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확인하는 사람은 5% 이내지만 성소수자 역시 8% 이내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이는 아직도 사회적-종교적 금기가 강해서일 것이다.

일단 왼손잡이는 밥도 왼손, 글도 왼손으로 쓰기 때문에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여기저기서 핍박받는다. 나는 이들을 ‘손 소수자’라고 한다. ‘옳은’의 반대이니 ‘그른’이다. 왼손잡이는 그르게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피로 얼룩진 외손잡이-마녀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워해도 왼손잡이는 태어나고, 다행히 ‘우향우’라는 명령에 ‘좌향좌’를 하는 왼손잡이라도 그르지 않다고 인정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

태생적으로 성소수자는 엄마 배속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 수정을 하면 세포는 무서운 속도로 분열하여 원판을 만든다. 원판은 여자다. 이 때까지가 8주다. 8주에서 12주까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휴식을 한다. 밥 뜸 들이기나 마찬가지로 엄마의 몸이 생각하는 시간이다. 내 몸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이 아이는 무사히 태어나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사항을 점검하고 준비한다. 약 한 달간 점검하여 결론을 내리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애를 키우기 시작한다.

Y염색체는 남성을 의미한다. Y염색체를 감지한 엄마는 남성호르몬이라는 조각칼로 여아를 남아로 바꾼다. 성기를 조각하고 두뇌를 깎아낸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을 기억해 보라. 언제나 그렇듯 조각 도구의 부족이나 과다가 생기기 마련이다. 겉을 조각하고 나서 두뇌 같은 내부 인테리어를 하려는데 건축자재가 모자랄 때가 있다. 겉은 남자인데 마음은 여자다.

혹은 반대로 여아인데 남성호르몬에 과다 노출되면 몸은 여성인데 마음은 남성이다. 그렇다. 남성호르몬의 노출에 따라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고 성전환 수술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과다 노출은 남성우월주의자가 아니라 자폐증의 원인이라 한다. 이게 바로 현대 과학이 말하는 동성애의 기원이다.

생리적으로 동성애는 엄마의 잘못도, 본인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하고 때린다고 적록색맹이 붉은 색과 녹색을 구분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방에 가둔다고 박치나 음치가 명가수 조용필로 거듭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나름 소수자다. 손 소수자, 잠 소수자, 눈 소수자, 코 소수자, 귀 소수자, 키 소수자, 성 소수자 등 무수한 소수자가 모여 이 세상을 이룬다. 그리고 소수자는 더 이상 단점이 아니라 타고 태어난 특징이자 개발해야 할 소질이며 개성이다. 핸디가 있어야 게임이 된다는 말이다. 각기 다른 색깔의 소수자가 모여 무지개 세상을 이루라는 하느님의 명령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정작 이를 거역하는 정당의 통성기도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느낌이다.

2000년 전의 노자(老子)조차 이렇게 말했다. “태어난 대로가 도이고, 문화는 도를 키운다. 자라나서는 생긴 대로 정체성을 이룬다(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생긴 건 생긴 대로 인정하며 서로를 키워나가는 무지개 세상을 이루고 살자는 말이다. 노자가 살았던 수천 년 전보다는 적어도 한발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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