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12.19 10:20

'한국의 FBI' 국수본, 국가·자치경찰 도움 없이 한해 2만7000건 이상 발생 강력범죄 해결할지 '의문'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경찰청 페이스북 캡처)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경찰청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거대한 국토를 가진 미국은 효율적 수사를 위해 NYPD, SFPD 등처럼 지역 범죄를 맡는 자치경찰과 연방 차원의 광역범죄에 대응하는 연방수사국(FBI) 간에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자치경찰은 지역 주민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만 그만큼 지방정치에 예속되기 쉽고, 업무의 파편화 혹은 중복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FBI는 이러한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 기관이다.

내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마치 FBI와 같은 기관이 생긴다. 바로 수사기능을 전담할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권력기관 개혁 3법'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며 공수처법, 국가정보원법, 그리고 경찰법 개정안의 법률공포안을 처리했다. 경찰법 개정안에 따라 경찰 조직은 국가경찰, 수사경찰, 국수본으로 구분된다. 

내년 1월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면서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이 부여된다. 그간 경찰은 수사 개시 이후 피의자의 범죄 혐의 유무와 관계없이 반드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했고,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을 전달하는데 그쳤다.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 검찰의 권한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경찰 자체 수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나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종결하면 된다. 대체로 검사의 지휘를 받을 일도 줄어들게 된다. 경찰 권한이 매우 커지게 된 셈이다. 

◆'바늘 구멍' 경찰 고위직, 수십명 늘어…경찰 수뇌부는 웃는다

경찰은 이번 권력기관 개혁 3법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경찰 조직 자체의 규모가 커지게 돼 경찰관 총원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위직 정원도 증가할 전망이다.

경찰의 수장인 치안총감(경찰청장)의 정원은 1명으로 유지되지만 그 아래 직급인 치안정감은 현재 6명에서 7명, 치안감은 27명에서 30명, 경무관은 65명에서 77명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며, 경찰서장급인 총경 또한 549명에서 576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직의 규모에 비해 고위직의 수가 극도로 적어 피라미드를 넘어서 '뒤집힌 압정'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 경찰 조직이었던 만큼 경찰 고위직으로서는 미소를 감출 수 없을 만한 상황이다.

3년 뒤부터는 국정원이 담당하고 있는 대공수사권도 이관받게 된다. 게다가 국정원이 갖고 있던 국내정보 수집 기능도 폐지되어 경찰이 국내정보 수집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지난 15일 "대공수사권 이관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대공수사권은 향후 경찰 조직의 확고한 권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고위직의 인원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대공수사권 이관과 국내정보 독점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무기까지 주어지는 모양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6일 권력기관 개혁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법무부tv 캡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6일 권력기관 개혁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법무부tv 캡처)

◆일선 현장 근무자, 업무 분담 잘 될까…수사 관할 문제·실적 선호 수사 우려도

고위직은 '희희낙락'이겠지만 일선 현장에서 근무해야 할 경찰들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경찰 조직의 규모와 권한이 확대되며 '공룡 경찰'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통제 방안은 경찰 조직 내 역할 분담이었다. 일원화된 지휘 체계의 현행 경찰조직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분할하고 여기에 수사기능을 전적으로 맡게되는 국수본까지 설치한 것이다. 당초 의도와는 달리 시행 초기에는 업무상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 임무가 세 가지로 나뉘면서 국가경찰은 경찰이 기존에 맡아 왔던 정보·보안·외사·경비 등을, 자치경찰은 생활안전과 교통·학교폭력·안전사고 시 긴급구조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국수본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대공수사권 이관 등을 통해 경찰이 갖게 되는 수사 기능을 전담한다.

다시 미국의 경찰제도와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국수본은 미국만의 독특한 수사기관인 FBI의 특징과 상당히 흡사하다. FBI는 법률상 미국 법무부 소속의 검찰 기구이지만, 수사기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경찰 조직의 일부처럼 여겨지곤 한다. 다만 FBI는 순찰, 경비 근무 등을 하지 않고 오로지 수사 업무만을 담당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국수본을 '한국의 FBI'로 지칭하게 되는 이유다. 민생과 관련한 순찰, 치안업무 등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도맡게 되고, 국수본은 수사 및 대공(대테러) 업무 등만을 전담한다. 

경찰관들이 자유로에서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제공=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찰관들이 자유로에서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있다. 내년부터 교통 단속 등의 업무는 자치경찰이 전담하게 된다. (사진제공=경기북부지방경찰청)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수본이 '수사 기능을 전담한다'는 애매한 표현이 수사 영역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수본은 주로 강력범죄에 대한 수사를 맡게 된다지만 국가경찰이나 자치경찰이 담당하는 성범죄 등 형사사건과 교통사고 등도 수사 진척 상황에 따라 중범죄로 발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에 발생한 살인·강도·강간·방화 등 강력범죄는 2만6476건, 교통범죄는 37만7354건을 기록했다. 그 외 모든 범죄 총계를 합하면 한해 동안 161만1906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수만건에서 수십만건에 달하는 사건들을 어느 기관이 맡아야할지를 당장 내년부터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러한 사건들을 국수본이 국가·자치경찰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도 의문이고, 세 기관 간의 협조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도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수본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규모로 구성될지도 미지수인 상태다. 다만 경찰청 내에 국수본을 설치하고, 지방청·일선 경찰서 등에 파견 형태 혹은 상주 형태의 수사관들을 배정한다 하더라도 최대 수백명 규모일 공산이 크다. 업무 분담과 인력 부족 문제가 현실화되기 전에 하루 빨리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간에는 민생치안사무와 관련해 수사 관할의 문제 등도 생길 수 있다. 경찰법 개정안은 자치경찰에 민생치안 밀접 수사 업무를 맡기고 있으나, 민생치안사무 중 전국적 규모나 통일적인 처리가 필요한 사무 등은 국가경찰의 사무로 분류하고 있다.

지휘 체계가 일원화되어 있는 현행 경찰 형태에서도 지역 경찰서 간의 관할 문제, 지역 경찰서와 광역수사대(광수대)와의 업무 분장 문제 등의 문제가 빈번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더 심화되지 않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조직이 나뉜데다 지휘 체계까지 분산되면서 수사 관할과 관련해 더 큰 혼란을 낳게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특히 관할 문제와 관련해 두 집단이 소위 '실적'이 될 만한 수사만 선호하고, 귀찮고 눈에 띄지 않을 사건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겠냐는 지적도 있다.

◆한 경찰서에 지휘체계는 3개…경찰청장-국수본부장, 상호 견제되나

경찰 사무가 분할되면서 지휘체계 또한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됐다. 국가경찰은 경찰청장, 자치경찰은 시도자치경찰위원회, 국수본은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특히 국수본이 신설되면서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 수사에 구체적 지휘·감독을 할 수 없게 된다.

치안정감이 2년 단임제로 보임하게 되는 국수본부장은 경찰의 수사를 총 지휘하면서 경찰청장 바로 아래에서 경찰청 차장과 함께 경찰 조직의 2~3인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이러한 경찰 조직 내의 권한 분산에 대해 ▲지휘체계 혼선 야기 ▲조직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은 '반쪽짜리 개혁' ▲'한 지붕 세 가족' 등과 같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지적이 나오는 것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무를 나누긴 했지만 조직 자체를 완전히 분리하는 이원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한 경찰서 안에서 각기 다른 지휘를 받는 조직들이 사무만 따로 보게 되는 일원화 방식을 채택했다.

일원화를 통해 업무 분할을 애매하게 나눠 관할 문제 다툼 가능성을 키운 반면, 분할을 통해 얻어야 하는 지역 상황에 맞는 자율권 보장·권한 분산 등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법 개정안 시행 전후 경찰 조직 구성도. (자료제공=경찰청)
경찰법 개정안 시행 전후 경찰 조직 구성도. (자료제공=경찰청)

또, 경찰권의 비대화를 견제하기 위해 국수본을 설치하긴 했지만 경찰청장의 권한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경찰청장과 국수본부장의 관계는 현재 검찰 조직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관계와 상당 부분 흡사하다. 일선 수사 지휘권은 검찰총장에게 있고, 법무부 장관은 검찰청법에 따라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이번 경찰법 개정안 또한 경찰 내 권한을 경찰청장과 국수본부장이 나눠 갖도록 해 서로 견제시키고자 국수본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경찰의 수사 지휘 전반은 국수본부장이 맡게 되고 경찰청장은 기존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된다. 다만 경찰청장 또한 법무부 장관과 같이 '재난·테러·집단사태에 준하는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지휘·감독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차례 수사지휘권 발동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권한에 막대한 영향을 줬듯이 경찰청장 또한 '중대한 위험'을 명분으로 국수본에 관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찰청장과 개방직이더라도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 제청,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대통령에 의해 최종 임명되는 국수본부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충실히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비대해진 경찰권을 통제하기 위한 국수본이 결국 '옥상옥'에 불과한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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