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18 11:15
청나라 말 지식인 이종오가 지은 <후흑학> 표지. 얼굴이 성벽처럼 두껍고, 마음이 숯처럼 검어야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 저작이다.

이번 4월 14일 중국과 대만 언론들은 아프리카 케냐 당국이 밀입국 혐의로 체포한 중화권 인사 77명을 중국으로 송환한 소식을 크게 다뤘다. 그 중 45명의 대만인들이 이슈의 중심이었다. 이들 일당 77명은 보이스피싱 사기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내 중국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수백억 위안을 갈취했다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사기(詐欺)를 당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기 수법이 선을 보이는 곳이 중국이다. 그런 중국의 사기 ‘전통’은 제법 유구하다. 명(明)나라 만력년(萬曆年)인 17세기 초에 장잉위(張應俞)라는 절강(浙江)성 출신이 <사기술(騙術)>이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총 4권 24류 88칙(總四卷二十四類八十八則)으로 이뤄진 이 책에는 각종 사기 수법을 유형별로 24가지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춘추 시절 제나라 양공(襄公)이 죽자 그의 동생인 규(糾)와 소백(小白)을 시급히 궁으로 불러들여 먼저 환궁한 동생이 제 환공의 뒤를 잇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규의 책사는 그 유명한 관중(管仲)이었다. 관중은 소백이 환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가 환궁하는 길목에 병사들을 매복시켰다. 관중의 예상대로 소백이 길목에 나타나자 관중은 그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소백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관중은 더 이상 규의 상대가 없다고 판단해 그를 모시고 환궁을 서둘렀다. 그러나 소백은 사실 화살에 제대로 맞지 않았다. 버클이라고 할 수 있는 금속 장식에 화살이 닿았고, 소백은 그저 죽은 척만 했을 뿐이었다. 이어 소백은 급히 말을 몰아 규보다 앞서서 환궁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제나라 다음 왕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보이는 장소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죽은 것을 믿게끔 하는 사기술은 중국 남북조 시절 남조의 송나라 무장(武將) 단도제(檀道濟)가 지었다는 병법서인 <36계(三十六計)>의 첫 계책인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내용의 ‘만천과해계(瞞天過海計)’에 해당하다.

이 계책의 원문을 보자. “주위가 준비가 돼있으면 의도가 태만해지게 마련이다. 늘 보이는 것은 의심치 않는다. 음모는 공개된 것 안에 숨어 있지 공개되지 않은 곳에 있지는 않다. 너무 공개되어 있는 것 자체가 음모를 담고 있는 것이다(備周則意怠, 常見則不疑。陰在陽之內,不在陰之外。太陽,太陰)”는 내용이다.

군사적인 상황에서 이런 사기 기법은 더욱 더 많이 활용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병법은 이 <36계>에 거의 다 나온다. 만천과해계 외에 성동격서계(聲東擊西計), 무중생유계(無中生有計), 차도살인계(借刀殺人計), 공성계(空城計) 등은 모두 사기 기법을 활용해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의 처세법에서도 이러한 사기기법을 활용한 것이 후일 청나라 때 이종오(李宗吾)라는 사람이 쓴 책 <후흑학(厚黑學)>으로 집결된다.

흔히 우리는 중국의 문화를 ‘사람 만드는 문화’ 또는 ‘사람 만드는 학문’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문화가 정문화(正文化) 또는 진솔한 문화(誠文化)라고 한다면 중국문화에는 그 반대급부인 부문화(負文化)또는 사문화(邪文化)도 들어있다. 여기에 바로 사기 문화가 들어 있다.

중국의 문화에는 공자와 맹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함께 생존의 전략이랄 수 있는 사기 문화가 같이 병존하며 내려오고 있다. 어쩌면 관가에서 이를 이용하여 민간에게 유교적인 공맹의 도를 가르치고 자기들은 정권의 생존전략으로서 변칙 문화와 사기 문화를 별도 간직하며 내려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 역대의 통치학이고 통치 매커니즘의 핵심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사기문화의 긍정적인 측면과 정당성이 있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중국 문화의 변칙성과 사기성에 근거해 미국에서도 지난 100년 중국의 대외 전략을 심도 있게 연구한 책이 있다. 바로 2015년 2월 출간된 MIchael Philsbury 가 쓴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이라는 책이다. "미국을 대체해 글로벌 슈퍼파워가 되기 위한 중국의 비밀 전략(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필스베리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 산하 중국 전략센터(Center for Chinese Strategy, Hudson Institute)의 소장이며, 미국 역대 여러 행정부를 거치며 백악관에서 대 중국 정책과 안보분야를 담당해 온 미국 내 권위 있는 전략분석가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의 경력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 장관 외에는 극소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지금껏 갖고 있었던 5가지 착각을 언급하고 있다. 미국이 대 중국 포용 정책을 펴면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협력관계가 될 것이라는 착각,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로 갈 것이라는 착각, 중국은 연약한 꽃 한 송이로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착각, 중국이 미국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착각, 중국은 영원히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등이다. 저자는 이 5가지 착각을 예로 들어 미국의 중국관이 오랫동안 잘못 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말 중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전략은 1992년 4월 28일 등소평이 주변사람에게 언급한 20자 방침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냉정하게 형세를 관찰하고, 자신의 내부 역량을 공고하게 하며, 상황을 침착하게 대응하며, 재능을 밖에 내놓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필요할 때는 맡은 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冷靜觀察,穩住陣腳,沉著應付.韜光養晦,有所作為)”는 발언이다.

우리의 주변 국제적인 형세는 늘 변화무쌍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유교적인 문화 흐름의 전통 못지않게 저들의 변칙적이면서도 매우 기만적인 사기 문화의 오랜 흐름을 살펴야 한다. 이제 중국의 전통을 깊이 이해하며 중국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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