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12.23 19:15

[뉴스웍스=남빛하늘 기자] 지난달 초, 전세집을 알아보던 직장인 A씨(27)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무주택자인데다 내년 가을 결혼 예정이라 입주자격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이다.

이후 입주하고 싶은 주택의 보증금 및 월임대료를 주변 집 값과 비교해본 결과 시세보다 오히려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판단('시세 60%' LH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시세보다 비싼 이유는? 기사 참조)됐지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최악의 전세난' 시대라는 점을 감안,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했다. 당시 한국부동산원은 11월 1주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71주 연속 상승 중이라고 밝혔다. 전세수급지수는 131.1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결과는 '광탈(광속 탈락의 줄임말)'이었다. 그저 '서류 제출 대상자' 선정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취업 준비 시절 '서류 전형 탈락' 소식보다 서글펐다고 한다. A씨는 "최소한 자기소개서라도 들이밀 수 있었던 그때가 감사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달 초에는 수서역세권, 남양주별내 등 신혼희망타운(행복주택) 입주자 모집을 보고도 신청하지 않았다. 빠르면 2022년, 늦으면 2023년에나 입주 예정이었을 뿐더러, 직장과 거리가 멀어 출퇴근에만 매일 왕복 2시간~2시간 30분가량의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당첨된다 하더라도 행복주택이 이름대로 행복한 주택이 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분양도 생각해봤지만, 부양가족이 많고 무주택기간이 길수록 유리한 방식인 가점제 위주 서울 청약시장에서 젊은 세대가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A씨는 매일 밤 부동산 앱을 들여다 보며 발품 팔고 있다. 이 것 말곤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과 함께.

이 이야기는 비단 A씨 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2030대의 일이다. 이들 대부분은 월세·전세에서 시작해 '내 집 마련'이라는 최종 목표를 가슴 속에 품고 산다.

앞서 정부는 11·19 전세대책을 통해 내후년까지 전국에서 11만4000호를 전세형으로 추가 공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12월부터 이번 대책에 따른 입주자 모집이 이뤄지게 되면 불안 심리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자신했다.

불과 12월말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수요자들의 불안 심리는 해소 되기는 커녕 더욱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는 총 4590건으로, 전달(4012건) 대비 14.4%(578건)나 증가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값이 77주 연속 상승하고 있는 데다 '전세 대신 매매'를 선택하는 수요자들로 인해 수도권 중저가 아파트값까지 오르자, 아파트보다 저렴한 다세대·연립주택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세집조차 구하기 어려운 무주택자들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간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마이 웨이(my way)'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전세시장과 관련, "12월 들어 전세값 상승폭이 일부 축소됐고, 전세 매물도 누적되는 정황"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동산 거래 현장에 단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나가 수요자 입장에서 살펴봤다면 이리 말할 수 있을까. 숱하게 부동산시장 안정을 외쳐왔던 홍 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언제가서야 식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한 언론사 부동산 관련 기사 아래에는 "이제 정부 말 안 믿는다. 거짓말 투성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국민들의 분노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정부 말을 믿고 아파트 매수를 늦췄다가 수억원 손해를 봤다는 유명 연예인은 공개석상에서 유느님께 해결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매일 일터에 나가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서민들은 이제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할까.

출범 4년차를 맞은 정부는 무려 24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정말 원하는 대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강한 의지를 발휘해 혜안이 녹아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너져내린 신뢰 관계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이번 정부의 부동산 대책 모두 '흑역사'가 될 공산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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