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12.27 11:22
(사진=SKY 뉴스 캡처)
조지 블레이크. (사진=SKY 뉴스 캡처)

[뉴스웍스=박명수 기자] 냉전시대 서방의 기밀정보를 소련으로 넘겼던 영국의 ’전설적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가 향년 98세로 사망했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공산주의자로 전향해 옛 소련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26일(현지시간) 러시아 해외정보기관인 대외정보국(SVR) 대변인은 러시아 타스통신을 통해 이날 블레이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그에 관한 책이 쓰이고, 영화가 만들어졌다"면서 "이 외국 자동차(foreign car)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운행을 끝냈다"고 말했다.

그는 1950년대 영국 대외정보기관인 MI6에서 동독 내 첩보조직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로는 소비에트연방(소련) 공작원으로 활동한 '이중간첩'이었다. 그는 1950년대 동유럽에서 활동하던 서유럽 첩보원 400여명의 신원을 소련에 넘겼다. 이로 인해 서방 첩보원 다수가 처형을 당하면서 서방의 정보수집 활동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또 블레이크는 동베를린으로 통하는 지하철 역의 전화에 영국과 미국이 군사용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는 기밀을 빼돌리기도 했다. 소련은 그 덕분에 그 도청 장치를 역정보를 흘려보내는 도구로 1년 넘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1년 2월 발각됐고 그해 5월 4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그는 1966년 동료 죄수였던 아일랜드 테러리스트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평화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동베를린을 거쳐 소련으로 갔다.

블레이크는 그 곳에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평화롭게 여생을 보냈다. 지난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블레이크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블레이크를 "탁월한 전문가이자 빼어난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며 애도했다.

영국은 그를 반역자로 간주했지만, 그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을 영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배신을 하려면 먼저 그(영국)에 속해야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거기에 속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사망 소식에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블레이크는 1922년 11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나중에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블레이크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의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고 1944년 영국 공군의 첩보부대 지휘관을 거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갔다.

그가 영국을 배신한 이유를 찾자면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48년 주한 영국 대사관의 부영사 직함을 갖고 서울에 와 북한, 중국, 소련 극동지역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서울에서 다른 외교관들과 함께 북한 인민군에 잡혀 3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쟁에 환멸을 느끼면서 공산주의자로 전향했다.

블레이크는 2007년 러시아 방송 인터뷰에서 "미군 비행기가 한국의 작은 마을들을 계속 폭격하는 것을 보고 서방에 대한 수치심을 느꼈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게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공산주의가 승리해 전쟁이 끝나는 것이 인류에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힌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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