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12.31 07:00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으면 학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PC방으로 향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코로나19를 빌미로 '학원 죽이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종합학원을 운영 중인 대표이사 A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A씨는 수도권 학원들이 12월 초부터 한 달 넘게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나날이 고통이 커져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원격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A씨의 학원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아예 비대면 수업이 불가능한 예체능학원은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2월 초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로 강화하면서 예외적으로 수도권 학원은 3단계에 해당하는 집합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와 관련해 당초 12월 28일로 계획했던 수도권 학원 집합금지를 1월 3일까지 일주일 가량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외출과 이동을 최소화한다는 이유에서인데, 현재까지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기말고사 기간이고 본격적인 방학은 1월부터 시작된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 달 가량 앞서 시기적으로 전혀 적절하지 않은 정책을 펼친 것이다.

학교 등교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원마저 다니지 못하게 하면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부족한 학습을 보완할 방법이 없다. 학원 운영이 중단되더라도 개인 과외교습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의 학생들과 달리 자습에 의존해야 하는 학생들의 학력 격차는 더 심화할 수 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PC방이나 오락실, 영화관 등은 기존 2.5단계 조치대로 오후 9시까지 운영하도록 한 반면, 특정인만 출입하는 학원에는 집합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원 집합금지가 학생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방지하자는 취지라면서도, PC방을 제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자는 방역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종합학원 근처에 위치한 한 PC방을 찾았다. 그곳에선 중·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낮시간에 갈곳이 마땅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PC방은 일종의 해방구로 보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특히 PC방에 칸막이가 있는 경우에는 좌석을 한 칸 띄우고 앉지 않거나 개별적인 음식 섭취가 가능한데, 칸막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집단감염으로부터 상당히 취약해보였다. 기자가 방문한 PC방의 경우, 얼굴을 돌리면 바로 옆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칸막이 구조가 부실했다.

기자가 방문한 PC방의 경우, 얼굴을 돌리면 바로 옆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칸막이 구조가 부실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장진혁 기자)
기자가 방문한 PC방은 얼굴을 돌리면 바로 옆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칸막이 구조가 부실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장진혁 기자)

다른 다중이용시설과 달리 유독 학원만 영업시간 제한이 아닌 영업을 전면 중단해야 하는 합당한 근거는 무엇일까. 눈씻고 찾아 보아도 답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학생들이 늦은 저녁까지 영업하는 PC방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만 유발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반복된 장기 휴원을 거치면서 이미 상당수의 영세 학원들은 폐업 수순을 밟았으며, 간신히 버텨낸 학원들 역시 8월 31일부터 3주 동안 집합금지 조치에 처해 강사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마련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다수의 학원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인해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보인다. 

정부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곳곳에서 이른바 '핀셋 방역'을 시행 중이다. 거리두기 2.5단계를 유지한 채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숙박시설 예약을 절반으로 제한하는 등의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고강도 거리두기에 나서야 할 국면에서 지역과 시설·장소별로 제한적 방역수칙만 내놓아서는 일상 곳곳에서 번지는 확산세를 억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12월 중순 이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연일 1000명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누그러들 기미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특정 업종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부의 '핀셋 차별'이 전국 100만명의 학원교육자들을 분노하게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동향을 지켜보면서 이번 주말에 거리두기 단계를 다시 조정할 예정인데, 이번 만큼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으면서도 허술하지 않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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