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1.02 10:35

민주당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도 없앨 필요"…'공소청' 격하도 물밑 검토
윤석열, 권력 수사 '스모킹 건' 빨리 잡아야…추가 기소 실패 시 역풍 가능성

지난 2019년 7월 진행된 윤석열(왼쪽에서 4번째) 검찰총장의 취임식에서 검찰 수뇌부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윤 총장의 뒤쪽에 지난해 검찰 내홍의 주역이었던 이성윤(왼쪽에서 2번째) 서울중앙지검장과 조남관(오른쪽에서 2번째) 대검 차장검사 등이 서있다. (사진제공=대검찰청)
지난 2019년 7월 진행된 윤석열(왼쪽에서 4번째) 검찰총장의 취임식에서 검찰 수뇌부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윤 총장의 뒤쪽에 지난해 검찰 내홍의 주역이었던 이성윤(왼쪽에서 2번째) 서울중앙지검장과 조남관(오른쪽에서 2번째) 대검 차장검사 등이 서있다. (사진제공=대검찰청)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지난 2020년을 관통했던 '검찰개혁'은 올해 상반기 사법연수원 23기 출신들 간의 '동기 내전' 형태로 펼쳐질 전망이다.

뉴스웍스는 지난해 10월 '법·검 잔혹사'를 다루며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 과정을 짚은 바 있다.([법·검잔혹사 하] '배턴 터치' 추미애, 윤 라인 숙청·학살…윤석열 "난 장관 부하 아냐", 링크 http://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7327&sc_word=%EC%9E%94%ED%98%B9%EC%82%AC)

추 장관이 물러난 이후 올해에도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질 갈등의 주역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시험과 연수원 동기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비롯해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모두 사법시험 33회, 사법연수원 23기 출신이다. 당·정이 이미 '검찰개혁 시즌2'를 예고한 가운데 동기들 간에 벌어질 권력 줄다리기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24일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 총장 징계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정면 돌파'였다. 여당 내 강경파들은 윤 총장 탄핵·담당 판사 탄핵·사법 개혁 등을 요구하는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윤석열 탄핵'·'윤석열 방지법' 등을 입에 올렸다. 

민주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은 입법 작업을 통한 검찰권 견제다. 이같은 강행 돌파 움직임은 윤 총장 징계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미 궤도에 오른 검찰개혁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절대 과반인 180석을 차지한 '거여(巨與)'라는 점도 강수를 둘 수 있는 발판임은 물론이다.

1월 1일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면서 검찰의 전유물이었던 수사권·수사종결권은 경찰로 일부 이관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라는 '6대 범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수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휘해왔던 검찰이 이제는 1차적 수사 주체의 역할을 경찰에 넘기고 2차적·제한적 수사주체로 바뀐 것이다. 수사종결권이 경찰로 넘어가면서 경찰의 판단하에 수사를 자체적으로 마무리하고 검찰로 송치하지 않는 것도 가능해져 검찰의 힘은 빠지게 된다.

윤호중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윤호중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민주당은 윤 총장 복귀 이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방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당내 기구인 '검찰개혁특별위원회'를 공식 발족한 민주당은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범죄 수사권까지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국가수사본부의 권한을 키워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맡기는 방안 등이 고려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검찰개혁특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민주당 의원(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은 "1단계 검찰개혁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중단 없이 검찰개혁 시즌2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직 검찰개혁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대응은 직무에서 배제돼있던 윤 총장이 극적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고, 징계와 관련해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됐던 검사들까지 반발 의사를 밝히면서 위기 의식이 고조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검찰개혁특위는 검찰 수사권 폐지에서 나아가 지난해 검란(檢亂)의 원동력이 됐던 '검사동일체 원칙' 폐기, 검찰청의 '공소청'(가칭) 격하 등과 같은 비장의 카드까지 만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개혁의 또 다른 한 축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역시 야당의 반발에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10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를 5명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야당의 비토권이 사실상 무력화된 이후 같은 달 30일엔 마침내 초대 공수처장 최종 후보로 김진욱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이 지명됐다.

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친다면 공식적으로 초대 공수처장으로 부임하게 되고, 공수처는 이번 달 중으로 출범하게 된다. 검찰이 쥐고 있던 권력 수사권이 공수처에게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SBS뉴스 캡처)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SBS뉴스 캡처)

이에 더해 1년 가까이 윤 총장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추 장관의 배턴을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넘겨받으면서 검찰개혁을 두고 윤 총장과 갈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 내정자는 지난 2013년 사법연수원 동기인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자 윤 총장을 '형'이라고 부르며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극찬한 바 있다.

윤 총장이 현 정권의 '눈엣가시'로 부각된 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태도가 급변했다. 당시 박 내정자는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맹비난하는 등 날을 세웠다. 이에 질세라 윤 총장도 "과거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지 않나"며 대꾸했다.

의원 재직 시절부터 윤 총장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해온 점, 추 장관과 같은 판사 출신인 점, 공수처 설치·검경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점 등을 고려하면 박 내정자 역시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추 장관과 같이 '검찰 힘 빼기'에 초점을 둘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정부 여당이 검찰개혁 과제를 하나씩 완수해나가는 가운데 윤 총장의 반격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빠르게 진행해나가는 것 뿐이다. 재작년 하반기 '조국 사태'로 촉발된 검찰의 권력 겨냥 수사는 지난달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첫 수확을 올렸다.

징계 집행 정지가 결정된 이튿날인 지난달 26일 출근한 윤 총장은 곧바로 주요 수사 현안에 대한 지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본인이 업무에서 배제돼있던 동안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옵티머스·라임자산운용 사건 등 정권과 관련해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 상황을 보고받았다. 업무 복귀 이후 권력 수사에 다시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증인 셈이다. 

윤 총장 입장에게 새로운 무기가 더 생겼다. 지난달 3일 신임 법무부 차관직을 맡게 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 사건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이 직접 맡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이 차관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다면 청와대와 민주당도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아울러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의 '무능력'을 대내외에 입증하고 검찰의 건재를 과시하는 사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낙연(왼쪽)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네이버 인물 검색)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이낙연(왼쪽)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네이버 인물 검색)

윤 총장의 거취 문제와 내년 상반기 진행될 검찰 인사 조치 역시 주요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의 임기는 올해 7월까지 예정되어 있지만, '조기 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총장은 지난 10월 국감에서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를 할 것인지 퇴임 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며 정계 입문 가능성을 열어놨다. 

실제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이 야권 1위에 더해 여권의 유력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 등까지 제치면서 윤 총장의 정치 도전이 마냥 뜬구름 잡기도 아닌 상황이다. 다만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예정돼있는 만큼 윤 총장이 7월까지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그 시기가 너무 늦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윤 총장이 대선 출마 의사가 있다면 조기 사퇴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만, 윤 총장의 사퇴는 검찰개혁 시즌2를 추진 중인 민주당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기에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중간에 그만둔다면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무리한 별건수사를 펼쳤다는 비난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윤 총장은 조기 사퇴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반기 중 '권력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징계 집행 정지가 결정되며 반격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만큼 윤 총장의 부담도 적지 않다. 월성 원전 조작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은 청와대까지 옭아맬 수 있는 사안으로 평가되지만, 검찰이 최소한의 '스모킹 건'을 잡지 못해 추가 기소에 실패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윤 총장과 검찰에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윤 총장이 업무 복귀 이후 관련 사건 보고를 받은 것은 권력 수사에 대한 고삐를 쥐는 것이면서 동시에 역공 방지를 위한 방어막 준비의 행보라고도 볼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늦어도 3~4월 이전에 결정적인 한방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 총장 징계 실패로 현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분석까지 나왔지만, 검찰이 관련 의혹을 명확하게 파헤치지 못한다면 집권여당의 의석수를 감안했을 때 청와대의 부분적인 영향력 약화로 그칠 수 있다.

한편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자로서는 취임 직후 예정된 상반기 검찰 인사가 당면 과제다. 지난해 초 추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검찰 수뇌부에 자리하고 있는 윤 총장 라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사 이동을 강행하며 '학살', '숙청'이라는 표현까지 들은 바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 라인을 이른바 '추미애 사단'으로 재구성했지만,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현실화된 이후엔 친(親) 추 장관 검사들까지 징계에 반발하며 등을 돌렸다. 인사권 행사를 통한 윤 총장 견제가 어렵다는 전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검찰개혁 시즌2를 앞두고 인사권만큼 윤 총장의 힘을 빼기 좋은 수단은 없다. 박 장관의 첫 인사에서 또 한 번의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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