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1.04 00:10

 

경기도 한 중고차 매매 업체. (사진=김남희 기자)
경기도 소재의 한 중고차 매매 업체.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대기업의 국내 중고차 시장 진출 열쇠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 결정'이 결국 연내 마무리되지 못하고 해를 넘어가게 됐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6년간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됐다가 지난 2019년 2월 적합업종 지정이 종료됐다. 

이에 중고차 업계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업종에 대해 법적으로 대기업·중견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제도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했다.

동반성장위가 지난해 11월 내린 판결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부적합'이었고, 곧이어 국내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최종 결정에 달렸다. 중기부는 업종의 영세성, 보호 필요성, 산업 경쟁력, 소비자 후생 이 네 가지 측면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당초 업계는 중기부가 연내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기부가 현재까지 침묵하고 있어 중기부의 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현 중고차 업계는 '소비자 후생'을 책임지지 못하므로 지정 요건에 부적합하고,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 결정을 내려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실제 국내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낮은 거래 투명성·품질 신뢰성 때문에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시장 이미지도 부정적인 편이다.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 상담센터에 접수된 중고차 중개 및 매매 관련 불만 건수는 2만3347건으로, 924개 품목 중 5번째로 많았다.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달 발표한 중고 자동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80.5%가 중고차 시장에 대해 불투명, 혼탁 낙후 등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이유는 가격 산정 불신(31.3%), 허위·미끼 매물(31.1%)이 근소한 차이로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주행거리 조작·사고이력 등에 따른 피해가 25.3%로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도 "현 중고차 시장은 허위 미끼 매물, 낮은 가성비, 판매자 후려치기 등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며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고, 그에 따라 시장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다"고 일침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기업 진출 등으로 중고차 시장 생태계를 개편해 중고차 시장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양재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뉴스웍스와의 인터뷰에서 "현 중고차 시장은 규모가 안 되는 영세상인들이나 개인 딜러가 각자 매물을 모으는 것부터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하는 구조"라며 "시스템이 부재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면 우리나라보다 규모가 2배가량 크고 해외 수출량은 3.7배 많은 일본 중고차 시장의 경우 인프라 및 경매 시스템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대기업 등이 시장에 들어와 중심을 잡고 체계적인 영업을 펼치며 중소상인들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스템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10월 중고차 시장 진출을 사실상 공식화한 현대자동차 역시 소비자의 보호를 위해 완성차 업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현 중고차 업체들은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 영세 상인들은 밥벌이를 잃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현장에서 활동 중인 중고차 개인 딜러 이 씨는 "현장에서 대기업 진출에 대한 위기감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중고차 자체의 원가가 높으니까 시장 규모가 커 보이지만 정작 중고차 매매 업체가 얻는 수익은 매매 수수료 뿐이라 원래부터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대기업까지 시장에 진출하면 소규모 업체는 전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는 신차 구매가 쉽고 보험, 사후 서비스, 대출 등을 종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브랜드 파워로 인한 신뢰감이 이미 형성돼 있어 단숨에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매매 종사자뿐만 아니라 정비, 판금·도색, 네비게이션·블랙박스 장착 등 중고차량 상품화와 관련된 전후방 산업 종사자의 일자리까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소비자 후생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업체들도 중고차 시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종사자 김씨는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소비자의 외면 속에 대기업에 일자리를 모두 빼앗길까 업계 사람들이 다 같이 시장 정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중고차 매매 업체 사장은 "시장 질서를 위해 대책 마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나 같은 이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며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또 임재강 대전중부자동차매매사업조합 조합장은 현 중고차 시장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운 허위 매물의 경우 관련 문제는 일반적 업계 종사자가 아닌 소수 무등록 사기 집단이 소비자를 유인하여 행하는 불법행위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러한 발생 경로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으로 업계가 비난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업체의 주장에 업종 지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기존 업체의 시장 정화 노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며, 이제는 업체보다 소비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운동연합 대표는 "두 차례에 걸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을 통한 6년간의 보호 기간에도 신뢰를 얻지 못한 매매 업계에 또 다시 기회를 주고, 소비자 피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 11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중기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대기업과 영세 업체가 함께하는 것이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도 많다.

실제 중고차 판매량이 신차 대비 2.4배 높은 미국의 경우 완성차 업체도 중고차 판매업을 하지만 규모 및 운영 방법별로 업체의 역할이 분화돼 오히려 더욱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대응할 수 있어 상생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해진다.

반면 영세성, 사업 체계 부족 등으로 우리나라의 중고차 판매량은 신차 대비 1.3배에 그친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영세 업체가 함께 시장을 구성해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전체 중고차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전후방산업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영세 업체의 매출도 되레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기부도 일단 상생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영세 업체의 소득을 보전하면서 체급이 현저히 다른 대기업과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기존 업계의 반발도 거세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기부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시장 질서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국내 중고차 산업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점점 더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까지 명확한 의견 표명보다 양측 의견을 수렴 및 조율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기부가 2021년 상반기 내에 결정을 내릴 것인지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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