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19 10:39
의정부를 포함해 각 정부 부처 사무실이 있던 옛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모습이다. 조선 태종 무렵 이 의정부 대신들이 지금의 경기도 의정부시에 옮겨가 일을 본 데서 지금의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역시 이 일대에 전해지는 설화와 관련 있는 역명이다. 앞의 망월사역, 회룡역에서 고루 등장했던 조선 건국의 이성계 설화 말이다. 그가 건국 뒤 아들 태종과의 불화로 함흥에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온 일을 가리킨다. 일반적인 이름 유래는 이성계가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지금의 의정부 한 사찰에 머물렀는데, 정사(政事)를 논의하던 의정부(議政府)를 아예 이곳에 옮겨와 국사를 처리하면서 비롯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설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의 최고 기관인 의정부 소속의 밭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나왔다는 게 <한국 지명 유래집>의 설명이다. 의정부에 속해 있던 밭의 이름은 의정부둔(議政府屯)으로, 이곳에서 나오는 곡물과 자원 등이 의정부 소속 관원들의 경비로 쓰였다는 얘기다. 설화보다는 훨씬 무게가 있어 보이는 설명이다. 실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의정부의 한자 표기가 意情埠(의정부)로 달리 나와 있다는 점도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의정부(議政府)라는 이름은 그래도 우리가 생각해 볼 단어다. 이는 조선시대 정치를 논의했던 최고 기관의 명칭이다. 조선시대 초반에 이미 생겨나 줄곧 그 왕조와 운명을 함께했던 기관이다. 의정(議政)이라는 말 자체가 ‘정사를 논의하다’라는 뜻이고, 그 뒤에 붙은 ‘부(府)’는 그런 기관의 관원들이 머무는 곳을 이른다.

이곳의 세 사람이 조선시대 임금의 밑에 있던 내각 총괄자다. 가장 높은 사람을 영의정(領議政)이라고 했는데, 앞에 붙은 글자가 ‘통솔하다’ ‘이끌다’의 領(령)이므로 모든 의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통령 밑의 총리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number 2’다. 그 영의정 밑의 우의정(右議政)과 좌의정(左議政)도 모두 정1품의 관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

의정부의 별칭은 도당(都堂) 또는 황각(黃閣)이라고 했다. 도당(都堂)은 정사가 이루어지는 기관(堂)의 으뜸(都)이라는 뜻이다. 황각(黃閣)은 황제가 머무는 곳의 문을 붉은색(朱)으로 칠했던 것에 비해 그 아래인 ‘총리’ 급의 관리가 머무는 곳을 노란색(黃)으로 칠한 데서 비롯했다는 설명이 있다.

앞의 동묘(東廟) 역을 지날 때 이미 설명한 내용이지만, 묘당(廟堂) 역시 정사를 논의하던 최고의 장소다. 황제 또는 임금과 주요 대신들이 모여 정치의 전반을 논의하는 곳이다. 조정(朝廷)도 쓰임새가 많은 단어다. 역시 주요 정사를 논의하던 곳을 일컫는데, 나중에는 ‘정부’라는 의미를 얻었다.

내친김에 궁전(宮殿)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자. 의정부도 원래는 조선의 궁전 안에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두 글자 모두는 원래 일반적인 건축물을 가리켰다. 그러나 왕조의 권력이 세지면서 결국 군왕(君王)이 머무는 집의 의미로 변했다. 왕조에서는 宮(궁)과 殿(전)을 이렇게 갈랐다.

일반적인 동양사회의 궁전은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으로 구분한다. 각 단어의 뒤 글자 둘을 합친 게 바로 조정(朝廷)이다. 우선 외조(外朝)는 왕조 차원의 커다란 행사가 열리며, 아울러 군왕이 여러 신하와 더불어 공개적인 정치적 행사를 치르는 곳이다. 이런 건축에는 대개 殿(전)이라는 한자를 붙인다. 서울의 경복궁(景福宮)에 있는 근정전(勤政殿) 등을 떠올리면 좋다.

그에 비해 宮(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축은 군왕과 그 가족, 또는 수행 인원이 묵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조선 경복궁의 예는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을 외전(外殿)과 내전(內殿)으로 구분했지만, 중국에서는 宮(궁)과 殿(전)을 비교적 엄격하게 구분한 흔적이 뚜렷하다. 그러나 정치라는 행위가 상하좌우(上下左右)를 가리지 않듯, 어디서나 이뤄지는 까닭에 장소로의 宮(궁)과 殿(전)이 아주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宮(궁)은 쓰임새가 많은 단어다. 궁전(宮殿) 외에 궁정(宮廷)이라고 써서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곳, 또는 최고 통치 그룹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궁중(宮中)은 임금이 머무는 곳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다. 궁궐(宮闕)도 마찬가지의 뜻이지만, 뒤의 闕(궐)은 원래 궁문(宮門) 앞에 설치해 경계를 벌이는 망루(望樓)를 가리켰다.

궁액(宮掖)은 왕의 아내들인 비빈(妃嬪)들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뒤의 掖(액)은 궁중에서 후미진 곳에 지어진 집을 일컫는다. 후궁(後宮)은 왕의 첩실(妾室)들이 머무는 곳이다. 가장 뒤편의 잘 보이지 않는 후원(後園)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후궁(後宮)의 별칭은 궁위(宮闈)다. 闈(위)는 원래 궁중의 옆문을 지칭했다.

동궁(東宮)은 임금의 자리를 계승할 태자(太子) 또는 세자(世子)가 머무는 곳이다. 이궁(離宮)은 임금이 규정상 머무르는 곳 이외의 거처다. 별궁(別宮)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별궁(別宮)은 왕이나 왕세자가 혼례를 치를 때 왕비나 세자빈을 맞아들이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뜻도 있다. 행궁(行宮)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지방 등으로 행차할 때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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