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19 11:31

4·13 총선이 끝나자 여야는 새로운 권력지형 개편에 대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청 관계의 재정립은 물론 지방자치에 대한 제도적 수정, 선거제도 개편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어느 당도 절대 과반을 확보하지 않은 이른바 ‘수평적’ 권력지형에서 합의와 협의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찾기 위한 의도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여야 모두를 관통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개헌’이다. 이른바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현행 헌법 체계에서는 더 이상 안정적인 권력 분점과 상호 견제를 통한 균형을 도모할 수 없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각 세력별 이해관계나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내용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할)나 내각책임제는 민감한 주제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를 도입해 합의와 연대의 정치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대통령 권력이 위축된다는 점에서 대권을 준비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대통령 4년 중임제, 레임덕 줄이고 책임 정치 구현할 수 있을까
87년 체제가 마련된 뒤 끊임없이 나온 지적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한계에 대한 것이었다. 임기가 5년에 국한돼 있어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성과를 선택받을 기회가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와 지방자치단체장, 기초의원 등의 임기가 4년이어서 대통령 선거와 주기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탄생 배경을 고려하면 4년 중임제로의 전환이 만만치만은 않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권위주의 시대에서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바로 장기집권이었다. 이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 5년 단임제를 도입하기로 1987년 합의한 것이 오늘날 헌법의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중임제로의 전환은 찬성 의견이 높다. 이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전복될 가능성이 희박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으므로 장기집권의 위험성은 대부분 해소됐다는 지적이다. 또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제한되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정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 국정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최대 8년까지 임기를 보장하고 4년에 한 번 재신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정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헌법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4년 중임제 도입시 대통령이 이른바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정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는 반론이 있다. 4년에 한 번 재선에 나서야 하는 대통령이 초반 집권 4년 동안 선심성 정치를 할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등으로 끊임없이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대통령이 무작정 대중 인기 영합적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대체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은 차기 대선에서 선출되는 대통령부터 적용되는 제도인 만큼 각 당이나 세력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크게 없다. 도입이 되더라도 4년에 한번 대선을 다시 치르기 때문에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문제는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책임제 도입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관건이다. 

◆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에 대해서는 의견차 커...본질은 ‘대권 vs 당권’ 구도
형식상 대통령제이지만 사실상 행정 권력을 총괄하는 총리(또는 수상)에 대한 임명권이 다수당에 있는 이원집정부제와 아예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다수당이 입법·행정권력을 모두 차지하는 내각책임제은 정치권에서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일단 보수성향이 강한 정치인들의 경우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이다.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재원 의원과 윤상현 의원 등이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 가능성을 전면 차단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현재 권력'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측근 인사들이 엄호에 나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반면 비박계 맹주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를 찾은 자리에서 이른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했다 한차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외교·국방·치안은 대통령이 책임지되 나머지 내치와 관련된 사항은 다수당 총리가 맡는 이원집정부제 언급이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이내 고개 숙여 사과를 해 가까스로 상황을 수습했지만 본심이 반영된 발언이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였던 우윤근 의원은 “전적으로 환영한다”며 김 전 대표를 두둔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이계 좌장 정치인인 이재오 의원 역시 대표적인 이원집정부제 옹호론자로 꼽힌다. 

친박계에서 개헌에 우호적인 인사도 있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2015년 11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공식 언급한 바 있다. 같은 친박계에서조차도 “홍문종 의원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며 비판했지만 홍 의원이 단순히 개인 소신을 밝힌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다수다.

일각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선출시키고, 친박계가 다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을 확보해 행정권력을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야권에서도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을 둘러싼 셈법은 복잡하다.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 도입을 언급하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기집권을 위한 음모”라며 “순수하지 못하다. 당당하게 총선 공약으로 내놔라”라고 압박하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야권에서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크다. 비노계 인사이자 지역주의 타파를 정치 슬로건으로 내거는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 대통령 권력과 행정권력의 분할을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면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책임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각자 추구하는 권력이 ‘대권’이냐 ‘당권’이냐의 셈법이다. 다시 말해 대권에 도전하고자 하는 정치인에게는 이원집정부제보다 기존의 대통령제가 더 매력적이고, 대권에 도전할 의사가 없거나 자신이 없는 인물 또는 특정 계파의 맹주에게는 이원집정부제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당권만 장악하면 행정권력까지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나 매력이 떨어지는 계파 수장에게 이원집정부제는 또 다른 대권 루트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홍문종 의원이 개헌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문재인 전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점이 이해된다. 김문수 전 지사 역시 이원집정부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 있어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최경환 의원 같은 인물이 이원집정부제에 다소 매력을 느낄 가능성 또한 점쳐진다. 

하지만 본질적 문제는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의 논의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개헌에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개헌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각 계파별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하는 데 있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연합 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연합으로도 부족하다”며 “만약 개헌으로 하려면 여야 관계없이 이른바 ‘빅딜’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같은 권력 구도 상에서는 그 같은 합의를 이끌 지도자나 리더십이 부재하다”며 이원집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 개헌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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