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1.09 17:05

천안·창녕 아동학대 '데자뷔'…신현영 의원 "학대처벌법과 복지법 구분 필요"

양부모의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정인 양의 묘지의 시민 조문객들이 남긴 '정인아 미안해'라는 편지가 놓여 있다. (사진=KBS뉴스 캡처)
양부모의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정인 양의 묘지의 시민 조문객들이 남긴 '정인아 미안해'라는 편지가 놓여 있다. (사진=KBS뉴스 캡처)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새해부터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국이 애도 분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은 무엇을 했냐"는 비난이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사과와 함께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정부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힘을 쏟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비극은 결국 반복됐다.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 '사후약방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다 실효성을 갖춘 대책이 나와야한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이후 271일 만에 숨진 정인 양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후 전국에서 정인 양을 향한 애도와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일반 시민부터 정치인, 연예인 등까지 각계각층에서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운동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 사건은 바로 지난해에도 연이어 터졌다.

지난해 6월 충남 천안에서 40대 여성이 동거 남성의 9세 아들을 여행용 가방 안에 7시간가량 감금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달 경남 창녕에서는 온몸에 멍이 들고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 9살 여아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결과 계부와 친모가 해당 여아를 파이프로 때리거나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고, 쇠사슬로 묶어놓는 등 잔혹하게 학대한 사실이 밝혀졌다.

충남 천안에서 동거남의 9세 아들을 여행가방에 가둬 살해한 40대 여성(왼쪽)과 경남 창녕에서 9세 의붓딸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부. (사진=JTBC뉴스/SBS뉴스 캡처)
충남 천안에서 동거남의 9세 아들을 여행가방에 가둬 살해한 40대 여성(왼쪽)과 경남 창녕에서 9세 의붓딸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부. (사진=JTBC뉴스/SBS뉴스 캡처)

이러한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같은 달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부랴부랴 아동학대 방지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학대 사건이 밝혀진 이후 지난해 6월 아동들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추진됐고, 학대 피해 아동을 즉시 가정에서 분리하는 '즉각 분리제도' 등의 도입 추진 등이 발표됐다.

이에 발맞춰 21대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들이 천안·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해 6월 이후 제안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법안들은 해가 넘어가기까지 반년간 '계류' 상태에 놓여있었다. 

정인이 사건 이후의 국회의 움직임은 마치 '데자뷔'처럼 지난해의 모습을 그대로 '복붙'(복사·붙여넣기)한 모양새다. 국회는 정인이 사건이 전국적인 파장을 낳은 뒤에야 경쟁이라도 하듯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아동학대'와 관련해 이번 21대 국회에서 제안된 법안은 8일 기준 총 46건이다. 이 가운데 16건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인이 사건을 다룬 이번 달 2일 이후 제안됐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중 18건은 지난 8일에서야 이른바 '정인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리됐다. 다만 처리된 18건 중 9건은 내용이 대안에 반영된 것으로 판단돼 본회의에 부의되지 않으며, 나머지 9건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계속 심사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아동학대 관련 법안. (사진=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지난 8일 국회에 계류되어 있던 아동학대 관련 법안. 맨위의 '대안' 법안은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사진=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 처벌 강화법을 제안한 의원 중 한 명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민주당 의원 측은 국회가 정인이 사건 이후에서야 급하게 아동학대 방지에 나선다는 지적과 관련,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다소 오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복지위에서 처리된 (아동학대 방지 관련) 법안이 상당히 많다"며 "(법안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우선 순위를 두고 통과할 수 있는 건 복지위에서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신 의원의 비서관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은 크게 아동학대 처벌법과 아동복지법으로 나뉘는데, 이걸 많이들 헷갈려 하신다"며 "반년 가까이 계류됐다가 8일에 처리된 법안들은 모두 처벌법이다. 복지법은 지난해부터 복지위에서 많이 논의가 됐고 어느 정도 통과된 성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선 "처벌법은 학대 조사 및 가해자 처벌 근거, 복지법은 피해자 아동 보호 방안에 초점을 두는데 피해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복지법을 더 중점적으로 다뤘다"며 "정인이 사건 이후 형량 강화 얘기가 나오는 건 처벌법 얘기인데, 처벌을 바꾸는 것은 비교적 더 어렵기 때문에 오래 계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신 의원 측은 "이번에 제안한 법안에는 아동입양체계 공공성 강화, 학대아동 의료지원, 지역사회 협의체 구성 등이 담겼다"며 "정인이 사건에서도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입양관리기관 등도 다 각자의 일을 했지만, 전문성 발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법안은 새로운 전문가 집단 구성을 통해 학대 징후의 조속한 발견·대응 능력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신 의원 측의 설명과 같이 지난해 말 일부 개정된 아동복지법 제15조 등은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강화된 보호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번 정인이 사건에 강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1년 이내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에 대한 현장조사 과정에서 학대피해 의심 및 재학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탁 보호 실시' 등과 같은 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4일 열린 제17차 사회관계장관회의. 이날 회의에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즉각 분리 제도', '신고 내실화 제도 정비' 등이 정상추진되고 있다고 언급됐다. (사진제공=교육부)
지난해 10월 14일 열린 제17차 사회관계장관회의. 이날 회의에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즉각 분리 제도', '신고 내실화 제도 정비' 등이 정상추진되고 있다고 언급됐다. (사진제공=교육부)

정인 양은 지난해 1월 양부모에게 입양된 이후 9개월 뒤인 10월 13일 사망했다. 정인 양이 양부모의 학대를 받던 도중이었던 지난해 7월 정부는 "아동학대 고위험군 아동 대상 1차 점검을 완료했다. 빠른 시일 내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표 3개월 뒤 정인 양은 숨졌다.

또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방지 대책 점검 내용(20.10.14.)을 보면 '즉각분리 제도', 신고 내실화를 위한 제도 정비 등이 '정상추진'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특히 '즉각분리 제도'와 관련해서는 법령 개정 전이라도 외관상 신체학대 정황 확인되는 경우 아동을 보호시설로 임시 분리할 수 있도록 9월 중 매뉴얼을 확정·배포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지난 10월 14일 정부의 발표가 있기 불과 하루 전 사망한 정인 양에게는 이러한 제도들이 전혀 '정상추진'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석 달 지나서야 밝혀진 셈이다. 정인 양의 신체 외관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멍 등이 무수히 많음에도 사망 당시까지 양부모에게서 분리 조치되지 않았고, 경찰은 3차례에 걸친 학대의심신고에도 불구하고 양부모의 말을 믿고 제대로 된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아동학대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공언했던 지난해 당정의 모습을 뒤돌아보면 정인 양에 대한 슬픔을 표하고, 입법을 서두르는 현재 행보는 그저 뒷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 8일 처리된 '정인이 법'에는 11개의 아동학대 대응 방안과 처벌 강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동학대신고의무자 신고 시 조사·수사 착수 의무화 ▲학대 현장조사를 위한 출입 장소 확대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 등의 분리조사 ▲수사기관-지자체 간 조사 결과 상호 통지 ▲사법경찰관리의 응급조치를 위한 출입권한 명시 ▲아동학대 관련 교육대상에 사법경찰관리 추가 ▲벌금 및 과태료 법정형 상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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