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1.01.11 00:15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 필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환경 보호·정도경영·투명경영 선도하고 협력사들과 동반성장 추구"

김승연(사진 왼쪽부터) 한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안병덕 코오롱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올해 신년사에서 'ESG 경영'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사진=전다윗 기자)
김승연(사진 왼쪽부터) 한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안병덕 코오롱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올해 신년사에서 'ESG 경영'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사진=전다윗 기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한화는 최근 분산탄 사업에서 손을 뗐다. 분산탄은 1개의 큰 포탄 안에 약 300개의 작은 포탄이 들어간 무기다. 날아가는 도중 작은 포탄이 흩뿌려져 축구장 3개 넓이의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수백발의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에 '강철비'란 별명도 붙었다.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 비인도적인 무기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분산탄 생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거나, 꺼린다. 방위 사업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한화그룹에겐 치명적이다. 분산탄 사업을 매각한 한화는 올해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어 둔 '태양광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방침이다. 한화생명 등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탈석탄' 선언을 하며 친환경 기조를 이어간다.

기업들이 ESG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ESG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 만든 용어다. 기업이 ESG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지배구조가 투명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과거 기업들은 ESG를 '생색내기' 정도로 생각했다. 착한 기업이란 이미지를 얻기 위한 사회공헌활동 정도로 봤다. 기업들의 담론도 도덕 교과서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ESG는 최근 들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거듭났다.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적 지표만으로 기업을 평가하던 과거와 달리,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따지게 되면서 ESG는 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떠올랐다. 

ESG를 소홀히 여기는 기업은 투자자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다. 앞서 언급한 한화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한화는 살아남기 위해 비인도적 살상 무기를 버리고, ESG 경영을 택했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자산 운용을 위한 투자 과정에서 ESG를 주요 평가 지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화석 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의 25%를 넘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블랙록 외에도 글로벌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기업의 ESG 역량을 평가해 투자 근거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존 전체 자산의 10% 수준인 ESG 투자를 오는 2022년 전체의 5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주요 선진국들의 ESG 실천 요구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ESG를 수치화해 재무제표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은 '친환경 정책'을 예고한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됐다. 우리나라도 주요 정책으로 '그린 뉴딜'을 꼽았고,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ESG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중론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재계 총수들은 너나없이 올해 신년사에 ESG를 언급하며 변화를 예고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ESG와 같은 지표는 이미 오래전부터 글로벌 기업의 핵심 경영 원칙으로 자리 잡아 왔다"며 "컴플라이언스 관점에서도 ESG를 강화해나가는 동시에 우리의 경영활동 면면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ESG를 내세웠다. 조 회장은 지난해 ESG 평가에서 효성 계열사 5곳이 A등급 이상 받은 것을 언급하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층 더 노력해 환경 보호와 정도경영, 투명경영을 선도하고 협력사들과의 동반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효성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안병덕 코오롱그룹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ESG 경영과 지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진단했다. 그는 "환경, 사회적 책임, 윤리적 책임의 가치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도화하고 실행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넘어 사회와 동행하는 코오롱을 만들어가자"고 깅조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ESG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정부가 고용이나 환경 문제에 적극 관여하고, 자본시장에서는 ESG 강화를 요구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졌던 한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환경·인권·노동 부문의 규제 강화가 예상된다. 자본시장의 ESG에 대한 요구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ESG를 강조하며 "기업도 더 이상 사회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사회 전체에 행복을 더할 기업의 모습이 무엇일지 앞으로 계속 고민하겠다. 물론 기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역량을 활용해 당장 실행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보자"고 했다. 최 회장은 수년전부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중요성을 주창하며 'ESG 경영 전도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ESG 경영은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로 연결되는 성장 동력"이라며 "ESG 경영의 핵심 아젠다를 선별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민첩하게 내재화하는 기업이 미래 경영 환경에서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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