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1.01.10 12:55

조용병 "신한 운명, '디지털 전환'에 좌우될 것"…윤종규 "역할별 특화된 종합 금융플랫폼 구현해야"

조용병(왼쪽부터)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사진=이한익 기자)
조용병(왼쪽부터)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사진=이한익 기자)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2021년 금융권의 중점 과제로 '디지털'과 '플랫폼 금융'이 떠올랐다. 신한·KB·우리·하나·NH농협금융 등 국내 5대 금융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이를 강조하면서 확인된 흐름이다. 금융그룹 회장 및 은행장 등의 신년사를 보면 금융권의 현안이나 키워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룹별로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디지털 강화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향에선 비슷하다. 신년사에서 찾은 신축(辛丑)년 경영 전략의 포커스(핵심)를 짚어봤다.

'디지털 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기술 기반 편의성을 제공하는 경쟁자 핀테크·빅테크의 영역이 확대되는 등의 요인은 전통적인 은행 등 금융회사의 진화를 재촉하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업종을 막론하고 모든 기업이 디지털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신한의 운명도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며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구축한 DT 구동체계를 바탕으로 현장과 본부, 국내와 글로벌, 신입직원부터 리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자"고 당부했다.

신한금융은 데이터 사업 강화를 위해 그룹빅데이터부문을 신설했다. 자회사별 빅데이터 사업 추진으로 인한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룹빅데이터부문은 마이데이터 등 사업을 담당한다. 신한금융은 핀테크, 빅테크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도 나설 계획이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신년사에서 "과거에 금융업은 사람과 서류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인지(人紙)산업이라 불렸지만 지금의 금융업은 인디(人Di) 산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사람과 디지털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최첨단 산업"이라고 언급했다. 

손 회장은 "올해는 마이데이터나 종합지급결제업 서비스가 본격 시작되면서 수많은 빅테크 및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업의 벽을 허물고 우리와 혁신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 디지털 플랫폼은 금융회사 제1의 고객 접점이다. AI, 빅데이터 등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한 전사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플랫폼을 혁신하고 디지털 넘버원(Digital No.1) 금융그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지금 우리는 일상적인 변화가 아닌 기업의 생과 사가 결정되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변곡점에 도달해 있다"며 "생존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방식의 답습이 아닌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고객 기반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플랫폼 금융'이 최적의 도구"라고 역설했다. 그는 "플랫폼은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시장과 같은 공간으로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사용자들이 몰리면 몰릴수록 사용자가 계속 늘어나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먼저 선점하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업간 융합을 촉진시켜 플랫폼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며 "우리가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 공급자로 전락하기 전에 다양한 생활 플랫폼과 제휴해 고객들이 머물고 혜택을 누리는 하나금융그룹이 주도하는 '생활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임기가 시작된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노키아와 코닥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과 성장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최근 언택트(Untact)라는 큰 변화는 디지털금융시대를 앞당겼고 '디지털화'는 모든 기업의 중요한 아젠다가 됐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농협금융은 디지털금융 혁신을 발빠르게 추진하고, 농협금융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디지털 선도 금융회사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해 나가겠다"며 "빅데이터에 기반한 마케팅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금융·경제·유통 등의 정보 결합을 통해 고객 수요에 부합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손 회장은 "빅테크·핀테크 기업 등과 제휴도 확대해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등을 활용한 상생하는 사업모델을 발굴하고 사업영역도 확장해 나가겠다"고 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신년사를 통해 "고객 중심의 디지털 혁신으로 넘버원(No.1) 금융플랫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그룹의 대표 금융 앱은 고객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통해 각 플랫폼의 역할에 맞는 특화된 종합금융플랫폼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금융의 디지털화와 정부의 규제완화 흐름 속에 빅테크의 본격적인 금융업 진출로 업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 블러(Big Blur)'의 시대가 도래해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라며 "데이터 기반의 고객, 상품, 채널의 혁신을 통해 빅테크사와의 차별화된 종합금융솔루션을 제공하고 AI 및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사전적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의 '빅 블러'는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 산업간, 온·오프라인간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핀테크 등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은행이 아닌 핀테크 기업을 이용해 해외 송금을 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빅 블러'의 시대는 이미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통해 전자금융거래법을 전면 개편해 결제 자금이 없더라도 고객 계좌정보만으로 이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 은행계좌를 이용하지 않아도 입출금·법인 지급결제 등 은행 수준의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가능한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급지시전달업이나 종합지급결제업이 도입되면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기업은 예금·대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뱅킹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슈퍼 금융플랫폼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은행은 고객의 모든 접점을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게 되는 단순 상품 제조업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연구원은 "변화의 물결에 대응해 이제 은행은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은행 경쟁력의 근간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가? 기존의 운영·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전환해야 생존을 위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핀테크나 빅테크 등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협력해야 하는가? 어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는가? 등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 은행들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잊혀져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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