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1.17 08:05

김세엽 연구원 "적재적소 활용되도록 물적·제도적 정부 지원 필요" 

폐배터리를 이용한 ESS 사업 구조.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폐배터리를 이용한 ESS 사업 구조.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정부가 그린뉴딜 사업으로 제시한 2025년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목표치가 300만대에 이르는 가운데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폐배터리) 시장이 새로운 개척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통상 10년 정도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본격화에 따라 앞으로 폐배터리 발생량은 급증할 전망이다. 업계는 폐배터리가 오는 2026년부터 본격 배출되기 시작해 국내에서만 1만개를 넘기고, 2030년에는 약 8만개 분량이 누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폐배터리의 수량이 많지 않지만 향후 발생할 물량을 고려하면 이를 활용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 방안으로 민간에서 폐배터리를 활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장려해 '폐배터리 산업'을 키우자는 목소리가 크다. 

◆폐배터리 시장 '쑥쑥', 2025년에는 78억달러까지 성장

폐배터리 산업이 성장하면 사회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폐배터리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뿐더러 전기차에서 나온 폐기물을 재사용·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전기차의 친환경성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

기업 측 입장에서 보면 폐배터리 산업은 최근 재계 필수 키워드로 떠오른 ESG경영에 걸맞으면서 배터리 가격 하락과 더불어 원가 절감 등을 통해 가격 경쟁력 확보 및 수익 개선이 가능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2018년 6100만달러 규모에 불과했던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이 오는 2025년에는 78억달러까지 커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BMW, 닛산, 토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도 폐배터리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우리 정부도 사회적·경제적 요구에 따라 민간의 폐배터리 활용을 위한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

민간 차원의 폐배터리 활용 필요성이 높아지자 환경부는 지난 12월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하며 전기차 소유자의 폐배터리 지자체 반납 의무를 폐지해 올해부터 민간에서 폐배터리를 수거, 보관 및 활용할 수 있게끔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폐배터리의 관리는 지자체 소관이었다. 전기차 소유자는 전기차 등록 말소 등으로 폐배터리가 발생하면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지자체에 반납해야 했다. 만약 기업 등이 폐배터리가 필요하면 지자체로부터 폐배터리를 다시 구매해야 하는 식이었다.

국내 기업들도 폐배터리 시장의 유망성 등을 바탕으로 정부가 열어준 문을 통해 폐배터리 활용을 통한 신규 사업 모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2MWh급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에너지저장장치.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2MWh급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ESS.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LG화학, 현대차, SK이노, 포스코 등 폐배터리 시장 출격 준비

폐배터리의 활용 방안은 크게 재사용과 재활용 두 가지로 나뉜다.

재사용은 전기차 배터리를 재분류 등의 과정을 거쳐 모듈·팩 단위로 다른 분야의 배터리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기존보다 약 70% 이하로 떨어져 주행거리 감소 등으로 구동 배터리로서 활용가치가 없어진 배터리, 이른바 폐배터리를 전기차보다 적은 배터리 용량을 요구하는 다른 곳에 투입해 재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잔존가치가 많이 남은 전기차 폐배터리를 전기차보다는 용량이 덜 요구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로 재사용하는 방안이 각광받고 있다. ESS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력을 충전·저장해 놨다가 필요한 순간 꺼내 쓸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ESS를 이용하면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운 신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재활용은 배터리의 잔존가치가 적을 경우 이를 완전히 녹이거나 분쇄해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고부가가치의 금속을 추출해 판매하거나 새롭게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케이프투자증권에 따르면 폐배터리에서 추출할 수 있는 유가금속의 가치가 자동차 한 대당 약 100만원에 달하는 만큼 폐배터리 재활용은 수익성이 큰 분야로 꼽힌다.

국내의 다양한 배터리·모빌리티 및 에너지 기업들은 이러한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방안을 신사업 모델로 제시하고, 사업화에 나선 상태다.

먼저 LG화학은 자원 선순환을 핵심 과제로 삼고 베터리 잔존 수명 예측 기술 개발,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리튬, 코발트 등 원재료 추출 기술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한국형 뉴딜 관련 규제 실증 특례(규제 샌드박스)를 승인받아 자체 보유한 폐배터리를 활용해 전기차 급속 충전용 ESS 제작에 대한 실증사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도 규제 샌드박스 승인으로 지난 10일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ESS와 태양광 발전소를 연계한 실증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LG화학과 현대차의 신청 건을 포함한 총 5건의 폐배터리 재사용 실증 특례가 승인된 상태로, 관련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애 주기를 모두 아우르는 선순환적 활용을 목표로, 폐배터리의 ESS 재사용,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스코도 폐배터리에서 니켈·리튬·코발트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 사업에 진출한다고 지난달 공표한 바 있다.

LG화학이 생산하는 전기차용 배터리의 모습.<사진출처=LG화학>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사진제공=LG화학)

◆신사업 펼칠 발판 부족…제도적 장치 마련되야

다만 현 국내 폐배터리 산업은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켠 수준이다. 갓 민간의 폐배터리 소유가 가능해졌으며, 기업의 사업 진출 기반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관련 사업에 대한 인허가 규정 등이 없어 각 기업은 사업 모델을 제시하고 실증 특례를 받아야만 시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폐배터리 탈거 및 재처리 공정과 안전관리에 대한 규정, 잔존가치 및 안전성 평가 기준 등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이에 폐배터리 산업이 자리매김하려면 먼저 정책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세엽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폐배터리가 적재적소에 활용될 수 있도록 각 분야별로 적용되는 품질과 성능에 대한 표준을 정립하고, 관련 업계가 표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배터리가 제조사 및 차종별로 형태나 구조 등이 각각 달라 관련 기술 개발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세엽 연구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 수집 및 규격 표준화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재활용의 경우 추출 비용이 추출로 얻는 금속 가치보다 더 드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처럼 초기 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폐배터리 기술을 향상하고 관련 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 및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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