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1.22 19:40

문 대통령 '설화'에 사전 위탁 재부각…진화 차원서 정부 신속 대응
입양가정 발생 아동학대 0.3% 불과…입양 인식 개선, 선택 아닌 필수

입양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생후 16개월 아이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전국적 분노가 사그라들고 있지 않은 가운데 입양 기관의 부적절한 대응이 조명되면서 '입양 전 위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대답하면서 '사전 위탁 보호제'(입양 전 위탁)는 문 대통령 설화(舌禍)에 대한 비판과 함께 더욱 화두에 올랐다.

입양 전 위탁제도의 필요성을 제언하는 보고서가 4년여 전에 이미 나왔지만, 이와 관련한 중대 사건이 터지고 대통령의 언급까지 있고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문제 봉합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양 가정에 의한 학대 사례가 극소수에 그치는 상황에서 정인이 사건을 아동학대가 아닌 '입양아 학대' 문제로 결부시키는 것은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는 국내 입양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경청할만하다.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입양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지면서 국민들이 입양 자체를 꺼리게 되면 대한민국은 결국 '아동 수출국가'라는 오명을 다시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우수정책연구' 선정됐던 '입양 전 위탁' 보고서…올해 정책도 큰 진전 없어

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청와대의 해명에서 언급된 '사전 위탁 보호제'의 필요성은 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2017년 이미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입양 전 위탁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마련'(연구기간 '17.5.2.~'17.10.31.)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제기한 바 있다. 당시에도 정부는 해당 보고서를 '우수정책연구'로 선정하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입양 전 위탁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입양기관에서 모든 관련 절차 진행과 위탁가정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양특례법상 완전한 입양은 가정법원의 허가로 성립되는데, 그 전에 이뤄지는 사전 위탁 등은 관련 규정이 현행 법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이 사전 위탁을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에서도 관행적으로 사전 위탁은 이뤄지고 있었다. 이와 관련, 복지부 보고서는 입양기관별 위탁가정 선정 및 관리 기준은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기관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기존의 입양아동 위탁 제도와 관련해 ▲예비 양부모 교육 또는 양부모 자격 강화 ▲적절한 위탁 기간 관리감독체계 확립 ▲사전 위탁제의 법적 제도화 ▲위탁 가정 확충 및 경제적 지원 ▲매뉴얼 개발을 통한 위탁가정 선정 기준 및 절차 확립 ▲입양전제위탁 의무화 등을 제언했다.

해당 보고서가 발표된 지 약 4년여가 지나서야 정부는 입양특례법 개정 추진을 통한 입양 절차의 공공성 강화, 사전 위탁 제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입양 제도 개선 관련 내용은 지난 19일 복지부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 브리핑'에서 언급됐다.

복지부는 입양아 대상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입양특례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여 입양절차의 국가책임 및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전 위탁을 제도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입양 절차에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점을 제외하면 4년 전 보고서의 내용에서 크게 진전된 바가 없는 수준이다.

◆복지부 "입양 전 위탁 법안, 국회서 계류되었다가 폐기…입양 철회 문제 방지 검토 중"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22일까지 20~21대 국회에서 제안된 '입양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21건으로, 이 가운데 원안이 가결된 법안은 단 2개에 불과하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 5개를 제외하면 14개 법안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그나마 원안가결된 법안들도 벌금 액수를 상향하거나 양자가 될 자격 요건 등을 일부 수정한 것에 그쳐 2017년부터 제기된 사전 위탁 제도를 다룬 법안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4년 전부터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정인이 사건이라는 비극이 터지고 나서야 제도 개선과 입법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20~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입양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사진=국회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입양 전 위탁(사전 위탁)을 제도화 하는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었는데, 국회에서 논의가 안돼서 계류되어 있다가 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법안이 폐지됐다"며 "당초 20대 국회에서 다루기로 했었는데 법안이 밀리다가 이제서야 재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입양 철회', '아동 교체' 등의 지적에 대해선 "부정적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양부모 사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위탁을 중단한다고 하면 그 양부모는 더이상 입양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보고 더이상 다른 아동을 추천하지 않는 등의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양 전 위탁에 이르기까지 양부모는 굉장히 많은 절차를 거치게 된다"며 "위탁 절차 전에도 사전 검증되는 많은 절차가 있어서 사전 위탁은 거의 실제 입양에 준해서 자격이 충분히 검증된 양부모에게만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서 입양 절차 개선을 언급한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입양 가족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러한 편견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지난해 8월 발행한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살펴보면 총 3만45건의 아동학대 사례 중 입양 가정에서 발생한 것은 0.3%인 84건에 불과했고, 친부모 가족에서 발생한 학대는 무려 1만7324건(57.7%)에 달했다.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기재된 학대 피해아동 가족 유형. (표제공=보건복지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아동학대 방지) 대책에 중점을 뒀던 부분은 입양기관에 대해서는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입양가정에 대해서는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라며 "이번 사건(정인이 사건)도 입양 기관이 사후 관리 중 놓친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입양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되 입양 자체가 위축되지 않도록, 또 아동이 가정에 갔을 때 상호적응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입양 가정과 아동학대를 연결 짓는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에 대한 우려는 있을 수 있으나, 대책의 내용 자체가 입양 가정이 아닌 입양 기관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다는 설명이다. 다만 입양 가정 편견 해소를 위한 홍보 계획 등은 아직 구체화된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입양 기관에 대한 공공성 강화 대책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입양 인식 개선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1년 2464명(국내 1548명·국외 916명) 규모였던 입양아 수는 2019년 704명(국내 387명·국외 317명)으로 줄어드는 등 지난 9년간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 기간 중 국내 입양아 수는 4분의 1 토막, 해외는 3분의 1 토막 난 셈이다.

정인이 사건을 입양아 학대와 연관시킨다면 안 그래도 죽어가고 있는 국내 입양의 명맥을 완전히 끊을 우려가 크다. 복지부 관계자의 설명대로 이번 정책은 입양 가정이 아닌 입양 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대중의 인식은 이미 '정인이 사건'과 '입양'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인 양의 양부모와 같은 특수한 사례에 매몰돼 이번 사건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사태로 이어진다면 입양 단절, 아동수출국으로의 회귀라는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중 입양 전 위탁을 제도화하는 내용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입법할 계획이다. 제도화와 함께 입양의 긍정적인 면을 비추는 국가 차원의 홍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