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숙영 기자
  • 입력 2021.01.22 23:15

50kWh 이상 전기 쓰면 TV 없어도 '자동 부과 규정' 변화없어

양승동 KBS 사장이 1일 인건비 비중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KBS)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해 7월 인건비 비중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KBS)

[뉴스웍스=이숙영 기자] 나(이숙영 기자)는 이틀 전 KBS로부터 21개월 치 TV 수신료를 되돌려받았다. 지난 1년 9개월간 2500원씩 납부한 수신료는 총 5만 2500원. 비록 큰돈은 아닐지언정 TV 없는 원룸에서 TV 수신료가 빠져나가며 나도 모르는 돈이 새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찾아온 배신감에 따른 대응이었기에 후련했다. 

수신료에 대해 알아보고 온라인 홈페이지와 전화 상담을 통해 수신료를 말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환불은 수신료 해지를 마친지 하루 만에 바로 이뤄졌다. 3개월 뒤 원룸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사를 한 뒤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제대로 환불받지 못했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일 수신료를 개선해 방송 재원 구조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 KBS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TV 수신료 인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양승동 KBS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21년 목표로 'TV 수신료 현실화'를 꼽았다. 현재 수신료는 월 2500원으로 지난 1981년 이후 동결된 금액인데 이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업이나 정부의 방해 없이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걷는 수신료는 방송법 제64조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자에 부과한다. 수상기는 TV나 TV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모니터를 일컫는다. 

즉, TV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보는 횟수에 상관없이 수신료를 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지 않고 기기를 게임용 모니터로 사용하거나 인터넷 동영상을 보아도 요금이 부과된다. 

국내 수신료는 한국전력공사가 징수하는 전기요금에 포함돼 있다. 매월 한전에서 청구하는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합산해 받고, KBS는 한전이 걷은 수신료를 받아 또 다른 공영방송인 EBS에 분배하는 식이다. 

다만 가정에 TV가 없더라도 한 가구에서 매달 50kWh(킬로와트)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TV 수신료를 내게 된다. 에너지 소비 효율 2등급 냉장고를 한 달 동안 사용할 경우 소비 전력량이 30kWh인 것을 생각해보면 50kWh는 TV가 없더라도 쉽게 넘을 수 있는 양이다. 

실제로 기자가 원룸에서 TV 없이 냉장고, 헤어기기, 전자레인지 등 생활 필수 기기를 사용해 소비하는 한 달 전기 소비량이 약 90~110kWh에 달한다. 

TV 수신료 납부에 관한 논란은 지난 2019년 이미 불거진 바 있다. 50kWh 이상 전기 사용 시 자동으로 수신료가 부과되는 점이 문제가 됐다. 실제로 국민 청원 등을 통해 "(정부에서) 애초에 TV 보유 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요금을 부과한다는 것 자체가 사기 의도로 봐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기세에 사업 성격이 전혀 다른 방송시청 요금을 합산해 내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의견도 더해졌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합산해 부과하기 때문에 자신이 수신료를 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지적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50kWh 이상 자동 부과라는 수신료 납부 기준과 수신료 납부 기관(한전)은 변한 것이 전무하다. 신청과 별개로 여전히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합산돼 자동납부되고 있다. 

전기요금 청구서의 청구내역에는 TV 수신료가 포함돼 있다. (사진=이숙영 기자)

기자는 이번 취재를 기회로 그동안 TV 없이 부당하게 내고 있던 TV 수신료를 해지했다. 먼저 한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기존 집주인이던 전기요금 납부 명의자를 나로 변경했다. 이후 한전 공식번호인 123으로 전화해 약 3분 정도 기다린 끝에 수신료 해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TV 없이 수신료를 내고 있어 이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하자 상담원은 TV 수상기 보유 여부와 전기요금 청구서에 적힌 고객 번호, 명의자 등 간단한 개인정보만을 확인한 후 바로 '말소'해줬다. 상담원은 수신료 해지를 ‘기록된 것을 완전히 지운다’는 뜻의 말소로 표현하며 상담을 이어갔다.  

상담원은 원룸뿐 아니라 오피스텔도 TV가 없다면 수신료를 말소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오피스텔 개별 가구에 전기요금 청구가 되는 경우는 한전에 요청하면 되고, 전기요금을 관리비에 포함해 내는 오피스텔의 경우는 관리실에 말소를 요청하면 된다. 

TV가 없는 것이 사실인지 별도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상담원은 "만일 TV를 설치하게 되면 KBS 측에서 데이터가 잡혀 재등록될 것"이라며 "관리실에서 공동납부하는 경우는 수신료 말소 전 현장 점검 절차를 거쳐 확인한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납부한 수신료를 환불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상담원은 한전에서는 최근 3개월 TV 수신료만 부분적으로 돌려줄 수 있으니 21개월 동안 수신료를 낸 나는 KBS 측에 먼저 전체 환불 문의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사진제공=이숙영 기자)
전기요금 청구서 뒷면 전기사용 안내. (사진제공=이숙영 기자)

KBS TV 수신료 문의 채널로 연락해 TV 수신료 전액 환불을 요청했다. 직원은 TV나 컴퓨터가 있는지, 이사 올 때 수상기(TV 및 TV용 모니터)를 옵션으로 제공 받았는지, TV를 시청하다가 중간에 없앤 것이 아닌지 등 약 4~5개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 끝에 이사 후 계속 TV가 없던 것으로 판단되자 수신료를 환불해 주기로 했다. 상담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앞선 한전보다는 과정이 다소 까다롭게 느껴졌고, TV가 없는지 계속해서 묻는 것이 마치 진실 추궁처럼 느껴져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직원은 만일 앞으로 TV를 소지하게 되거나 이사를 할 경우 2주일 내로 신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TV 수신료와 관련 안내를 통상 어떻게 진행하는지 묻자 전기요금 청구서 뒷면의 '전기사용 안내 8번 사항'에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이 말한 8번 사항에는 "TV수상기는 소지 후 30일 이내에 KBS에 등록하고, 등록된 수상기 이전 또는 대수 변경 시는 2주일 이내 신고"하라고 쓰여 있다. 안내 사항은 눈에 띄는 위치에 있지 않아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기 전까지 일반적으로 알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실제로 원룸 및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지인 5명에게 질문해보니 그중 4명이 수신료가 전기 요금에 포함돼있다는 것과 TV 수상기 등록에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또한 최근 전기요금 청구서를 모바일로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안내를 접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자도 현재 카카오톡을 활용해 모바일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고 있는데 카카오톡의 '청구서 자세히 보기' 페이지에 들어가도 8번 사항과 같은 안내는 찾을 수 없었다.

연도별 필수매체 인식 추이. 2011년부터 TV(노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반대로 OTT 시청이 가능한 스마트폰(빨강)의 필요성은 상승하고 있다. (자료=KISDI 2019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캡처)

혼자 살며 TV를 설치하지 않고 OTT로 방송 콘텐츠를 시청하는 기자처럼 TV를 없애는 1인 가구의 수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번거롭게 TV를 설치하고 수신료를 지불할 필요 없이 SKT, KT 등 통신사의 인터넷망을 통해 충분히 국내 방송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OTT 플랫폼은 국내에서 수신료 청구 방식, 인상 등 논란이 계속되던 최근 몇 년 사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에 접어들고 OTT 이용자가 급증하며 3~4인 가정에서의 TV 시청도 줄고 있다. 이는 곧 TV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정보통신연구원(KISDI)의 2019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TV를 필수매체로 인식하는 소비자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1년에는 전체 응답자의 60%가 TV를 필수매체로 선택했지만 2019년에는 32.3%로 급격히 떨어졌다. 

OTT는 수상기가 필요한 TV와 달리 스마트폰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소비자는 지상파의 대다수 방송을 비롯해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OTT가 TV에 비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수신료가 인상된다면 TV를 없애고 다른 기기를 통해 OTT를 이용하는 현상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월 이용료 2900원의 가성비를 앞세운 쿠팡의 OTT '쿠팡플레이'부터 해외 OTT 신흥강자 '디즈니플러스'까지 국내에 진출하며 OTT 시장 경쟁은 극에 달하고 있다. 올해 TV 수신료가 인상된다면 OTT와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확률이 높다. 

포털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TV 수신료 취소하는 법'에 대한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아직은 TV를 시청하고 있지만, 수신료가 오른다면 굳이 비용을 지불하며 TV를 시청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유튜브에는 이미 '수신료 안내는 법! 2021년 KBS 수신료 인상에 미리 대처하세요'라는 영상이 올라와 16만 뷰를 달성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공영방송이 수신료 납부 방식을 한전 위탁 식에서 직접 걷는 투명한 방식으로 바꿔 신뢰도를 높이고 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며 "수신료를 올리기 전에 수신료를 내고 싶은 방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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