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1.23 14:05

고봉준 평론가 "표절·도용 막으려면 사후 관리와 함께 수상 취소·혜택 회수 강화 필요"

(사진=Pxhere 캡처)
(사진=Pxhere 캡처)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2018년 백마문화상 수상자인 김민정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뿌리'를 도둑맞았다.

이 작품을 훔친 손모 씨는 남의 작품으로 5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심지어 손모 씨는 단어나 구절 등 일부(표절)도 아니고 글 전체를 몽땅 훔쳐다 썼다.

김 작가는 지난 16일 피해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 알리며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겼다"고 적었다.

김민정 작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사진=김민정 작가 페이스북 캡처)
김민정 작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사진=김민정 작가 페이스북 캡처)

최근 이러한 손모 씨의 행각이 알려지며 문단과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김민정 작가의 작품 '뿌리'를 도용해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등을 수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손모 씨는 "작품 표절이 문학상 수상에 결격 사유가 되는지도 몰랐다"며 "상금을 타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겠다는 생각에 구글링한 글로 여러 곳의 문학상에 공모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특히 분노한 것은 김 작가처럼 공모전 등에 참여하며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를 준비 중인 황 씨는 이 사건을 접하고 "문장이나 문단을 베낀 것도 아니고 작품을 통째로 가져다 쓴 경우는 또 처음 본다"며 "충격적이었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진짜 글 쓰는 친구들은 작품 하나 쓰는 데 몇 개월부터 몇 년까지 갈아 넣는다. 또 비슷한 작품들 피하려고 여러 작품을 읽어보고 비교한 뒤 다시 글을 수정하는 작업을 수도 없이 한다"며 "피땀 흘려 쓴 노력의 결과물을 마음대로 가져다 써서 한 군데도 아니고 5개가 넘는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작가 지망생 이 씨는 "손모 씨가 수상한 공모전들이 소위 메이저 공모전도 아니고, 또 문학 공모전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여기저기 나간 것을 보면 손모 씨는 문학에 진짜 뜻이 있어서 공모전에 참여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작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문학 공모전이 그 가치를 잃고, '스펙1' 정도로 치부된 것 같아서 씁쓸했다"고 토로했다.

황 씨와 이 씨는 입을 모아 "손모 씨처럼 남의 작품을 표절·도용한 이들은 향후 문단에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책을 출판하는 데 있어 제약을 둬야 한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모 씨가 도용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손모 씨를 수상자로 뽑은 문학 공모전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지자체 주관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는 김 씨는 "이번 일로 문학 쪽에선 논문 표절·도용을 검사하는 카피킬러 같은 표절검사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게 드러난 것 같다"며 "작품 전체를 베껴도 못 알아채는 데 부분을 베낀 것은 오죽하겠느냐"고 일침했다. 이어 "내 실력을 검증받으려 지금껏 다양한 문학 공모전에 참여했는데, 공모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한 공모전 사이트에서 제공한 2020 12월 문학공모전 달력. (사진=엽서시 문학공모 사이트 캡처)
한 공모전 사이트에서 제공한 2020년 12월 문학공모전 달력. (사진=엽서시 문학공모 사이트 캡처)

이에 문학 공모전 관계자들은 표절·도용작을 걸러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한 문학 공모전 운영진 관계자는 "한 달에만 몇십개의 공모전이 열리는데, 이 모든 공모전의 수상작을 모아둔 데이터베이스가 없고, 몇몇 공모전은 소규모 출판물로만 수상작을 공개한다"며 "주최 측에서 심사 기간 안에 이 모든 것을 찾아 일일이 확인하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등에서 홍보를 목적으로 만든 문학 공모전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수상작은 물론이고 언제 어느 공모전이 열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실제 한 공모전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문학 공모전 달력에 따르면 지난 12월에만 70여개의 문학 공모전이 열렸다. 이 수많은 공모전은 다양한 각 주최에 따라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공식적인 리스트업이나 통합적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심사위원들이 이를 걸러내는 것도 한계가 명백한 현실이다.

마로니에백일장 등 다양한 문학 공모전 및 백일장에서 심사를 맡은 고봉준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는 "심사위원이 AI가 아닌 이상 모든 작품을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문제를 심사위원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모전 운영 과정 전체에 표절이나 도용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단도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지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절이나 도용을 걸러낼 수 있도록 문학 공모전 수상작들을 한 곳에 저장하고, 수상작 발표 전 운영진 측에서 작품 검색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움직이고 있다. 

한국소설가협회의 경우 문학 공모전 및 수상작에 대한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매뉴얼과 규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상 발표 이후에도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고, 남의 작품을 표절·도용한 사람에 대한 대응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봉준 평론가는 "이번 사건은 스펙에 익숙해져 있는 시대가 만든 모순점"이라며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인터넷으로 작품 등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이상 이런 일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실질적인 해결책은 수상작 관리 및 사후 확인을 꾸준히 하고 표절·도용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며 "표절·도용 사실이 밝혀지면 작품을 모두 회수하고, 수상 및 수상으로 인한 혜택을 철저히 거두는 식으로 원작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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