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1.25 21:33

서울시 직원 방조혐의 정황파악 안돼…피소사실 유출 의혹도 확인 불가
서울시엔 2차 피해 방지 대책 마련 권고…여가부, 관련 지침 마련해야

<사진=국가인권위원회 페이스북>
(사진=국가인권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성희롱 의혹을 인정했다.

인권위는 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등을 대상으로 한 직권조사에 대해 심의·의결했다.

이날 전원위원회는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 등을 결정했다.

인권위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박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자의 주장 외에 행위 발생 당시 이를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이 부재하거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입증 자료가 없는 경우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됐다.

인권위는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청 직원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전보 요청 및 상급자들의 잔류 권유는 사실이지만 전보 요청의 원인이 성희롱이라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참고인들이 박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했다고 볼만한 객관적 증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지자체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 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서울시가 지난 4월 비서실 직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인 이른바 '4월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요구와 2차 피해에 대한 조치를 요청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2차 피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결됐다.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서는 "경찰청, 검찰청, 청와대 등 관계기관은 수사 중이거나 보안 등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박 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는 입수하지 못하였으며, 유력한 참고인들 또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는 등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이로 인해 피소사실이 박 시장에게 전달된 경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인권위는 서울시에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방안 및 2차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과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 업무 관행 개선,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구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에게는 ▲공공기관 종사자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모두 이수할 수 있도록 점검을 강화하고 ▲공공기관의 조직문화 등에 대한 상시 점검을 통해 지자체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예방활동을 충실히 할 것 ▲지자체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기구에서 조사하여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 ▲실효성 있는 2차 피해 예방 및 대처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매뉴얼 등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번 직권조사를 실시하면서 우리 사회가 성희롱 법제화 당시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음에 주목한다"며 "향후 인권위는 성희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뿐 아니라 차별적 환경과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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