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21 11:50

노동개혁 4대 입법을 두고 기나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여야가 이른바 ‘3개 법안 분리론’에 합의할 조짐이다. 야권과 노동계가 극심히 반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은 일단 제쳐놓고, 여야가 큰 이견이 없는 3대 법안을 먼저 통과시키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과연 파견법이 빠진 3개 법안만 통과시킬 경우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초 노동개혁의 논의 자체가 나오게 된 배경이 노동유연성 제고와 각종 고용 관련 규제의 해소였는데, 정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파견법·기간제법 개정안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3대 입법을 통과시키고 나면 야권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노동개혁에 합의해줬다고 주장할 명분이 있어 나머지 유연성 확대 방안을 추진할 명분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당초 5대 법안에서 시작, 정치 논리에 2개 핵심 법안은 빠져
지난해 9월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타결된 이후 정부·여당이 입법한 노동개혁 입법은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법 ▲기간제법 등 5개 법안에 대한 개정안이다. 이중에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외한 나머지 3대 입법안에 대해서 여야는 합의를 이뤘다. 물론 사용자 측과 노동계는 모두 여야 합의안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3개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된 나머지 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던 중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기간제법을 양보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해 노동개혁 논의는 4대 입법안으로 전선이 축소됐다. 이제 여야가 노동개혁을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는 파견법 개정안으로 모아진 것이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4·13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하면서 파견법 개정안을 추진할 동력과 주도권을 상실했다. 그러자 지난 20일부터 열린 4월 임시국회에서는 일단 여야가 합의한 3대 법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 파견법과 철회된 기간제법은 20대 국회로 그 공을 넘기자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 노동개혁 취지는 '노동유연성' 제고
당초 노동개혁 논의 필요성이 불거진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높은 고용 경직성과 강력한 고용 규제가 있었다. 세계적인 경제 기구가 발표한 각종 지표에서 한국의 노동유연성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1월 열린 다포스포럼에서 UBS(스위스 금융 그룹)가 공개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가별 적응력’ 백서에서는 한국의 노동유연성 순위를 139개 국가 중 83위라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37위)·러시아(50위)보다도 낮은 순위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웨덴(20위), 독일(28위), 노르웨이(9위) 등보다도 낮은 순위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지표상에서 한국의 낮은 유연성에 대한 경고의 신호는 많다. 지난 2014년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는 한국의 노동유연성 순위가 2000년 58위에서 2013년 133위로 급락했다며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적이 반영 돼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을 현 정부의 국정 과제로 채택한 것이다. 

◆ 핵심 법안 두개 빠진 노동개혁...과연 '개혁' 맞나
문제는 올해 초 일찌감치 빠진 기간제법과 최근 제외 가능성이 커진 파견법 개정안이 노동개혁 5대 입법에서 그나마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3대 법안 중에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는 근로기준법의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노동개혁 취지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지만, 나머지 2개 법안은 오히려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처우 개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180일에서 270일까지 늘려주고, 급여액도 마지막 월급의 50%를 60%로 상향조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산재보험법은 출퇴근시 발생하는 재해도 보험처리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즉, 노동유연성 확대와는 거리가 먼 개혁법안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고령 근로자, 전문직 종사자, 6대 뿌리산업에 한해 파견근로자 사용을 허용하게 해주는 파견법 개정안은 그나마 고용 규제를 풀고 경직성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년까지만 고용할 수 있도록 돼있는 기간제 근로자를 일부 경우에 한해 4년까지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법 개정안 역시 노동유연성 확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법안이 빠진 노동개혁은 당초 정부·여당이 의도한 바와 완전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현재 4월 임시국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대 입법을 우선처리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19대 국회까지는 입법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야당이 새누리당의 입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급한대로 먼저 3대 법안을 처리하고 나머지 법안을 다음 국회에서 논의하는 선에서 양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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