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21 15:31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향후 정치 행보에 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대권 출마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옅은 미소만을 보인 반 총장의 의중에 과연 어떤 계획이 들어 있는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차기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종 국제무대에서 조우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가 하면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반 총장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는 설이 정가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특히 4·13 총선에서 김문수·오세훈·안대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을 모두 잃어버린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른바 ‘반기문 카드’가 마지막 희망의 끈으로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압도적인 인지도와 대중적 호감도는 물론 ‘충청권 몰표’를 가져다줄 수 있는 총장이 침몰해가는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의 대권 경쟁력이 흔들리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야권의 명실상부한 대표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뒤쳐지는가 하면,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반 총장이 이미 경쟁력 면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과 아직까지 속단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에 밀리는 반기문
리얼미터에서는 18~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의뢰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 3명의 유력 대선주자를 두 명씩 붙여서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문 전 대표와 반 총장의 양자구도에서는 문 전 대표가 42.8%를, 반 총장이 42.3%의 지지율을 기록해 문 전 대표가 오차범위 내에서 0.5%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한편 ‘없음·잘모름’ 응답은 14.9%로 나타났다. 한편 안 대표와 반 총장의 대결에서는 반 총장이 41.0%를 기록, 32.3%의 안 대표보다 8.7% 포인트 앞섰다. ‘없음·잘모름’ 응답은 26.7%로 ‘문재인 vs 반기문’ 여론조사보다 더 많았다. 

마찬가지로 지난 18일 문화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문재인(20.5%), 반기문(18.9%), 안철수(13.5%), 박원순(6.0%) 등의 순으로 나타나 반 총장은 문 전 대표에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인터넷매체 데일리안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문재인(25.0%), 반기문(19.8%), 안철수(14.2%) 등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 벌써 ‘반기문=새누리당 후보’ 신선감 떨어졌나...밴드웨건 효과 지적도 있어
여권에서는 이 같은 조사 결과에 술렁이고 있다. 아직 등판도 하지 않은 반 총장이 벌써부터 지지율에서 문 전 대표에 밀리는 것은 심상치 않은 신호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이미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인식이 굳혀져 대중적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무엇보다도 반 총장과 새누리당의 정치적 친화성은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각종 국제회의나 외교 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반 총장이 친밀하게 교감하는 모습이 언론에 다수 포착되면서 자연스럽게 ‘반기문 낙점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반 총장이 지난 한·일 위안부 협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방북(訪北)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등이 모두 청와대와의 교감 아래 반 총장이 움직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게다가 야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은 문 전 대표로, 국민의당은 안 대표로 대선주자 대진표가 비교적 명확해졌다. 반 총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굳혀지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총선 직후 나타나는 일종의 ‘밴드 웨건 효과(편승효과)’라는 해석도 있다. 즉, 총선에서 승리한 야권의 승세가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한 반 총장의 행보가 명확하지 않아 판단 자체를 유보하는 이들도 다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총선 직후 야권이 여론에서 우세한 상황이어서 현재 여론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며 “출마 선언을 하고 나면 지지층이 결집해서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막상 등판을 하고 나면 온갖 언론의 검증과 의혹제기, 야권의 비판 등에 시달릴텐데 벌써부터 신선함을 잃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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