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4.21 16:40

‘보그’ 등 세계적인 패션잡지를 발행하는 미디어그룹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Conde Nast International) 주최로 30개국 패션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럭셔리 컨퍼런스’가 21일 막을 내렸다. 올해로 2회째인 럭셔리 컨퍼런스가 서울에서 열린 것은 세계 유행의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함을 가미한 한국 패션이 세계 시장에서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보그의 수지 멘키스 에디터도 컨퍼런스의 서울 개최에 대해 “한국이야말로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곳”이라며 “럭셔리 산업의 새로운 변화가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K-뷰티에 이어 K-패션이 차기 한류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K뷰티와 K패션의 성장 배경은 두말할 필요 없이 드라마와 가요 등 한류 문화 덕분이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가한 크리스토퍼 우드 에스티로더컴퍼니코리아 사장은 “한류는 아시아의 첫번째 물결은 아니지만 홍콩·일본의 물결과는 달리 오래 지속되고 있다”며 “한류는 관심과 수용의 결합체이자 음악·드라마·음식·화장품의 결합체”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다소 시들해져 가는가 싶던 한류가 이번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계기로 다시 불길이 거세진 만큼 지금이야말로 K패션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히 K패션은 수입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K럭셔리’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은 자타공인 면세점 강국이다. 2014년 기준으로 미국의 한국의 면세 시장은 78억달러로 중국의 50억달러, 미국의 38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면세점 산업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롯데, 신라를 위시한 업체들의 인프라가 굳건한데다 해외 패션 및 관광업계의 신뢰가 있는 만큼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면세점 강국의 위치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져 있는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K럭셔리 제품으로 소프트웨어까지 채운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컨퍼런스 기간 동안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오르 등 60여개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이 방한하자 면세점업계 재벌 3세들이 앞다퉈 그를 만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은 글로벌 수출 산업이나 마찬가지이니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유치하는 작업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만의 럭셔리 브랜드 없이 이들이 방을 뺀다고 할 때 빈방만 잔뜩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K뷰티는 오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LG생활건강의 후 등이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이제 K패션, 나아가 K럭셔리의 차례다. 모든 주변 여건은 무르익은 듯하다.

수지 멘키스 에디터는 "한국 정부가 K팝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볼 때 'K럭셔리'가 없을 이유가 없다"며 "한국은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아직 마케팅 실력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바꾸어 말하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마케팅 실력을 키운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컨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도 “이제 삼성 패션도 해외로 눈을 돌릴때”라며 “IT를 기반으로한 삼성의 첨단 기술과 디자인 능력 등을 투입해 K패션의 선두주자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의 분석대로 그동안 우리가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지 못한 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를 소비하는 데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스타일과 역사에 자신감을 갖게 된 만큼 독창적인 스타일의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손재주와 품질력으로 명품 브랜드의 생산기지였던 한국은 이제 유행을 빠르게 뒤쫓아가는(fast follower) 소비시장이 됐으며 앞으로 새 유행 트렌드를 앞장서서 주도해가는 주체(first mover)가 되는 길만 남았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이미 주춧돌을 놓아주었고 K뷰티가 기둥을 세워주었다. K패션, K럭셔리 브랜드가 지붕을 덮으면 한류 콘텐츠와 브랜드로 지은 튼튼한 집이 마무리된다. K럭셔리가 한류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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