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21 17:32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 주역 마오쩌둥(毛澤東)이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이다. 중국 후난(湖南)이 배출한 현대 중국 정치사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삼국지(三國志)>를 구성하는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는다는 일이 조금은 우습다. 여러 대에 걸친 중국인들의 ‘입담’이 수많은 영웅과 호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중국인들의 거칠 것 없는 ‘입담’은 결국 나관중(羅貫中)이라는 인물이 펴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귀결이 지어졌는데, 그 안에 등장하는 영웅과 호걸은 정말이지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소설의 형식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나온 <삼국지연의>의 주역은 분명히 촉한(蜀漢)의 유비(劉備)다. 원래의 중원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는 방략(方略)에 따라 지금의 쓰촨(四川)으로 흘러들어가 북부의 조조(曹操)가 이끄는 위(魏), 동쪽의 손권(孫權)이 이끌었던 오(吳)와 함께 천하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사람 말이다.

우리는 유비와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복사꽃 피는 정원에서 “태어난 날짜는 다르더라도 우리가 죽는 날짜는 같다”는 의형제의 관계로 맺어지는 장면에서 벌써 ‘대륙’의 남아(男兒)가 지니는 영웅호걸의 기상에 빠져들고 만다. 이어 유비의 세 의형제가 초야에 묻혀 생활하는 희세의 대 전략가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극진한 예로써 군사(軍師)로 모셔오는 장면, ‘음험한 정치인’의 어두운 인상에서 좀체 벗어나지를 못하는 조조의 활약상, 적벽(赤壁)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공방 등을 읽으면서 대륙이 지닌 방대함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영웅과 호걸의 드라마에 열광했다.

그 <삼국지연의>의 마력(魔力)은 아주 지대했다. 나뉘어져 싸우지만 언젠가는 통합으로 향하는 중국 역사의 특성을 이해하며 왕조와 권력, 그를 두고 벌이는 남성들의 웅장한 스토리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로써 중국이라는 거창한 무대에 거창한 남성들이 거창한 권력을 휘어잡기 위해 역시 거창한 싸움과 우정, 또는 의리를 선보이는 장면에 열광했다.

그러나 정작 조조와 손권, 그리고 유비 밑에서 묵묵히 싸움을 이어갔던 수많은 장졸(將卒)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특히 유비와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량과 조자룡(趙子龍) 등의 영웅과 호걸만이 돋보이는 촉한이라는 나라에서 그들의 권력 쟁탈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던 병사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유비는 AD223년 지금의 三峽(삼협) 중간에 있는 白帝城(백제성)이라는 곳에서 숨을 거둔다. 221년부터 이듬해까지 벌인 이른바 ‘이릉(夷陵) 싸움’의 여파였다. 유비는 자신의 의형제인 관우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수 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三峽(삼협)을 따라 동진해 오나라 손권의 장수 육손(陸遜)과 대규모의 전쟁을 벌인다.

그 싸움의 경과는 잘 알려져 있다. 육손은 복수심에 불탔던 유비 군대의 약점을 잘 이용해 기다리며 그 예기(銳氣)를 꺾은 뒤 차분한 공세를 벌여 유비 군대 대부분을 없앤다. 유비는 그 대패(大敗)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아들 유선(劉禪)의 후사를 제갈량에게 맡긴 뒤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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