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숙영 기자
  • 입력 2021.02.24 07:00

"4세 경영 없다"…지배구조 지주사 위주로 개편해 재단이 관리하는 스웨덴 '발렌베리' 방식 등 거론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스웨덴 살트쉐바덴 그랜드 호텔. (사진=살트쉐바덴 그랜드 호텔 공식 페이스북 캡처)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스웨덴 살트쉐바덴 그랜드 호텔. (사진=살트쉐바덴 그랜드 호텔 공식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이숙영 기자]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동학개미 운동'에서 개미들은 삼성전자를 사 모으며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쳤다. 해외에 나가면 외치는 '두유노(Do you know) 시리즈'에도 BTS, 기생충, 강남스타일과 함께 삼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을 빼고 한국 기업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이 삼성이고,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도 단단하다.

이런 삼성이 4세 경영승계를 포기했다.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째 이어 온 삼성의 오너 경영이 사실상 종료되고 다른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재벌' 아닌 '덕망 있는 명문가'로의 변신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삼성이 오랜 기간 롤모델로 꼽아온 지주사를 통해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모델 혹은 회사 매각으로 부의 사회 환원을 실천해 영원히 이름을 남긴 카네기 모델로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까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삼성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가족 경영에도 박수받는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  

발렌베리 그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중인 스웨덴의 대표 기업이다. 발렌베리 그룹의 규모는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넘어서며, 스웨덴 주식 시장의 시가총액 4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념 하에 스웨덴 대표 기업에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재단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배한다. 

발렌베리 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상위에 발렌베리 재단을 두고 그 아래 중간 지주사인 'FAM'과 '인베스터AB'를 통해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재단은 기업을 견제하고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한편 각 기업에서 벌어들인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사회에 환원한다. 사회과학, 인문학, 교육 등 다방면의 공익사업에 투자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펼친다. 

발렌베리 그룹과 관련된 재단은 총 16개로, 그중에서도 재단을 대표하는 3개의 재단이 공동으로 비상장기업인 재단자산관리(FAM)를 설립했다. FAM은 산하에 세계 최대 베어링 제조기업인 SKF, SAS그룹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발렌베리 재단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의 의결권 지분 57%를 가지고 그 아래 기업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인베스터AB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SEB), 중장비 회사 스카니아, 항공·방위산업체 샤브, 통신 장비 기업 에릭슨,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양한 분야에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 또한 지난해 12월 기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37.1%를 차지하며 국내 경제를 이끌고 있지만, 삼성과 발렌베리를 바라보는 국민의 평가는 엇갈린다. 

발렌베리 가문은 가족 경영을 기반으로 경영권을 승계한다. 다만 가족 경영에 대한 국내의 따가운 시선과 달리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가 인정받는 이유는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후계자에 혼자 힘으로 명문대학교를 졸업할 것, 부모의 도움 없이 금융 시장에 진출해 실무 경험을 쌓을 것 등 다양한 조건을 제시한다. 

'견제와 균형'을 지키기 위해 최종적으로 단 2명의 리더를 선출한다. 이들은 그룹 경영자가 되더라도 정해진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나머지 계열사의 리더는 전문 경영인을 두어 운영한다.

현재는 5대에 해당하는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터AB 회장이 발렌베리 그룹의 경영에 참여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캐롤라인 앙카르크로나, 안드레아 간데 등이 재단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카네기 도서관 인스타그램 캡처)
피츠버그 카네기 도서관 (사진=피츠버그 카네기 도서관 인스타그램 캡처)

◆ 후계 없이 사회 환원으로 이름 남긴 '카네기' 

카네기는 부의 사회 환원을 통해 영원히 이름을 남겼다. 철강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앤드류 카네기는 교육진흥재단, 평화재단 등 각종 재단을 설립해 공공 도서관, 교육 시설을 설립하는 등 자선 사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카네기는 철도 회사를 시작으로 '카네기 스틸'을 설립하고 미국 철강 산업의 큰 손으로 자리 잡았다.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해온 것으로 알려진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수치'라며 죽기 전 자신이 보유했던 재산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3억5000달러 이상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가치로 약 90조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카네기의 사회 환원은 방식은 통상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거나, 사후 재산을 기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카네기는 30년 넘게 홀어머니를 모시고 독신으로 살다가 52세가 되어서야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62세 때 슬하에 딸 한 명을 두었는데 이 딸이 회사를 물려받지도 않았다.   

카네기는 60대 중반에 미국 시장 내 4분의 1가량을 점유하고 있던 철강 회사를 JP모건에 매각하고 사업에 손을 뗀다. 이후 그는 재단을 설립해 사회사업을 펼치며 부를 이룬 사람이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직조공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가 어린 시절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건립하기 시작한 카네기 도서관은 세계 각지에 2500개 이상 자리하고 있다. 또한 뉴욕의 공연장인 카네기 홀, 카네기 멜런 대학교 등도 현재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카네기의 이러한 행보는 카네기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남기는 데 일조했다. 또한 후대에 세계적인 부자인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등이 그를 롤모델로 꼽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성에 더 빛을 보고 있다. 

1889년 카네기가 저술한 '부의 복음'에 따르면 부자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줄 의무가 있으며, 잉여재산은 공동체를 위해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카네기는 글의 내용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됐다. 지난 18일에는 ‘배달의 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이 5000억원 이상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내 신흥 부자들이 카네기와 비슷한 형태의 자산 기부를 시작하고 있다.

삼성의 오랜 롤모델 발렌베리…변화할 삼성의 지배구조

국내에서 부각된 '재벌' 문화는 자격 여부의 상관없이 가족이 기업을 잇는다는 점에서 불합리한 면이 있지만, 삼성을 현재의 삼성으로 발전시킨 기반이 되기도 했다. 

전문경영인은 고용된 기간 내 성과를 입증해 보여야 하므로 단기적 성장에 집중하는 반면 오너는 이와 별개로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기업을 이끈다.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반도체 등 신사업도 단기적인 성과를 생각해서는 쉽사리 투자할 수 없던 분야다.

삼성은 국가를 대표하는 규모의 기업으로써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신사업과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해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삼성의 존속은 삼성과 관련된 국내 모든 기업과 기업 구성원들의 생계와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다. 

카네기와 같이 오너가가 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오너가는 유지하되 직접적인 지배 대신 재단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발렌베리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발렌베리 가문은 삼성이 오랫동안 지배구조 롤모델로 삼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9년 12월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회동을 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적어도 15년 이상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고 이건희 회장 또한 스웨덴 출장 당시 발렌베리 가문을 방문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라진 삼성이 나아갈 길도 발렌베리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대국민 사과에서 이 부회장은 자녀에 경영권 승계가 없을 것임을 약속했다.

또한 이 부회장은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며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며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발언은 오너가가 직접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인재를 영입해 전문경영인을 키워내는 발렌베리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삼성이 재단을 설립해 오너가에서 사회 공헌 활동에 집중한다면 이는 더욱 발렌베리 모델에 가까워진다. 

삼성이 발렌베리 모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삼성 내부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를 지주사 위주로 정리하고 이를 재단이 지배하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에는 삼성물산이 정점에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주식 지분 보유를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같은 방식으로 삼성전자를 지배를 공고히 하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핵심이다. 

증권가에서는 고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의 지분을 흡수한 뒤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두고 아래 계열사를 관리하는 체제의 지배구조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산업자본이 금융을 보유할 수 없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은 분리돼야 한다.

발렌베리 가문은 사회 환원과 오랜 자선 사업으로 단순한 이익 집단인 기업이기 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 가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예로부터 명문가는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집안을 칭해왔다.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이 막대한 재력과 자본을 지닌 '재벌'에서 그칠지 혹은 더 나아가 덕을 지닌 명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달라진 삼성을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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