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2.19 20:00

수강인원 제한없고, '1학기' 아닌 '1년치' 신청…자사고 존속 여부·교원 수급 문제 등 걸림돌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중 하나인 전남 능주고등학교의 온·오프 융합(블렌디드) 교실. (사진제공=교육부)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오는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서 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시간표를 짤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지난 17일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해 올해 초등학생 6학년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학점제'인 만큼 고교 학사 운영이 큰 틀에서는 대학과 유사한 형태로 이뤄지게 된다. 수업 운영 기준이 '단위'에서 '학점'으로 전환되고, 출석 일수를 채우면 졸업이 가능했던 것이 192학점을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학점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대학생들은 매 학기 인기 있는 과목 수강을 위한 수강신청을 흔히 '전쟁'으로 표현하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이러한 전쟁에 휘말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고교 선택 과목, '수강인원 제한' 없을 것…인기 과목은 2~3개 반 운영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교과과정을 보면 교양 교과목·전공 교과목·기타 교과목으로 구성되며, 졸업을 위해서는 126~14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교과목별로도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정해져 있다. 수강신청은 매 학기 전 대기순번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자신의 대기순번까지 수강인원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그 학기엔 수업을 들을 수 없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은 '수강인원 제한'으로 수업을 듣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을 일이 없을 전망이다. 고등학교는 한 학년당 학생이 500~600명이기에 수천명에서 많게는 1만명이 넘어가는 대학과는 그 규모가 다르고, 학교별로 수강신청기간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선택과목의 '인원 제한' 자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국어 영역으로 예를 들면 국어 자격을 가진 선생님은 문학·독서·고전읽기 등 국어에 해당되는 모든 과목들을 다 가르칠 수 있다"며 "대학에서는 교수님이 본인이 개설한 과목만 가르칠 수 있으니 인원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데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국어 영역의 '고전읽기' 수강신청이 굉장히 많다면 학교마다 국어 교사가 여러 명 있으니 반을 2~3개로 늘려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등학교 수강신청은 '1학기' 아닌 '1년치'…수강신청 지도도 병행

수강신청 방식 자체도 대학과 고등학교는 다르다. 매 학기 전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대학과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2학기 중에 내년도 1년치 과목을 모두 수강신청하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등학교는 대학과는 개념이 좀 달라 내년도 과목을 전년도 9월이나 11월에 수강신청을 하게 된다"며 "수강신청 변경도 하게 되지만, 변경도 대학처럼 시스템화해서 한다기보다는 담임선생님이나 교육과정 부장선생님 등 선생님들과의 상담을 거쳐 진로와 연계해서 과목의 변경이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7일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다만 고교학점제 도입 후에도 1학년 학생들은 국어·영어·수학 등 '공통과목'을 의무적으로 다 들어야 한다. 2, 3학년 때 심화 선택 과목을 듣기 전에 기본 소양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발표를 보면 학점제 도입 이후엔 고1 때 진로 및 학업계획을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된다. 고1 때 공통과목 수강을 의무화함으로써 자신의 성향과 적성, 희망 진로 등을 파악하게 해 이후 선택과목 수강에 영향을 주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과목을 선택하더라도 심화 내용을 미리 배우면 학생들이 지식을 정립해 가는데 있어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선생님들이 수학Ⅰ과 수학Ⅱ 같은 과목 간 위계 등을 설명·안내해줄 예정이고, 그러다 보면 학생들도 학기별, 학년별로 (수강을) 순서대로 하게 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수강신청에서 선생님들과의 상의를 거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

◆고교학점제, 아직 갈 길 멀어…자사고·교원 수급 문제 '시끌'

한편 현 정권의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교육부가 4년 뒤 전면 도입될 고교학점제의 기본 틀을 발표하면서 벌써부터 수많은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법원이 세화고·배재고 등 2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린 것이 직격타가 됐다. 고교학점제는 현 정부의 '고교 평준화 정책'을 위한 요소 중 하나인데, 자사고가 2025년까지 존속될 경우 전체적인 계획 자체가 어그러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고에 이어 세화고와 배재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위법판결까지 나오자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자사고→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반고 일괄 전환을 반대하는 헌법 소원까지 제기된 상태다.

교원 수급 문제도 고교학점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소인수 과목 증가로 학급 수가 지금보다 늘고 수업 분야도 확대되기 때문에 교원 증원이 불가피하다. 교육부는 2022년까지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 수요 증가를 반영한 중장기 교원수급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령인구 감소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향후 늘어난 교원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고교학점제의 법적 근거가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안'이라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시행령(대통령령)은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행정부) 의결만으로 제·개정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정권이 바뀔 경우 백지화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국회가 모법인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는 방식 등으로 응수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엔 학생들을 두고 정쟁을 벌이냐는 비판이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까지는 4년, 정부 임기는 불과 1년 남은 상황에서 교육부는 벌써부터 꼬리를 무는 우려들을 하루빨리 봉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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