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2.20 17:30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미국연방항소법원에 항소 등 거론…합의금 통한 해결 가능성 가장 높아

(사진=Pixabay 캡처 후 수정)
(사진=Pixabay 캡처)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3년째 이어진 LG와 SK의 배터리 특허 소송에 대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결은 LG의 승리로 끝났지만 두 기업 간의 분쟁은 아직 끝맺지 못하고 있다. 두 기업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ITC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결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지난 2019년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자사의 배터리 관련 핵심인력을 빼갔다는 이유에서다.

ITC는 2020년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예비 결정 이후 최종 판결을 총 세 차례 연기한 끝에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은 "이후 절차를 통해 이번 결정을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편 ITC의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항소 등 정해진 절차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 진실을 가릴 계획"이라며 판결 이후 행동을 암시했다.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은 ITC의 결정을 존중하고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에 판결 결과에 마땅한 합의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전례 없어…항소는 양사에 타격

두 기업 간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유력한 향후 시나리오로는 크게 3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먼저 미국 대통령이 60일간의 ITC 판결 심의 기간 내 수입금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수입금지 조치는 무산되고, 양사가 합의할 필요도 없다. 패소한 SK이노베이션에는 가장 달가운 시나리오다. SK이노베이션은 "대통령 심의를 통해 이번 결정을 바로잡을 것"이라며 이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번 판결로 인한 영향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미국 내부로까지 번질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지아주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약 50억 달러(당사 발표 기준)를 투자해 6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진행에 어려움이 생기자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업계는 거부권 행사는 미국의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만 가능하고, 현재까지 영업비밀 침해에 관련한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SK이노베이션이 심의 기간 종료 후 60일 이내에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항소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항소하면 두 기업 간 분쟁은 쉬이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항소 결과가 나오려면 보통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항소 결정은 두 기업 모두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항소가 진행되면 양사는 막대한 소송 비용을 치러야 할 뿐 아니라 미래 불확실성으로 인한 기업가치·신뢰도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항소를 한다 해도 수입금지 조치는 시행되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사업 확장 기회를 놓치고, 배터리 사업 전반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미국 상무부의 결정을 무효처리 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정부 기구인 ITC가 오랜 기간에 걸쳐 내린 판결이 항소를 통해 반전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2010년 이후 ITC 최종결정에서 수입금지 명령이 나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총 6건이며, 이 중 5건이 항소를 진행했으나 결과가 바뀐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막대한 비용을 치렀지만 결국 원점에 머무는 일이 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삼성SDI와 함께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 기업의 분쟁이 연장되면 국내 배터리 산업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산업부 산하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 등을 맡았던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페이스북을 통해 "배터리 소송전 사태가 장기화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다 패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K-배터리 하면 우리나라 배터리가 우주 최고인 양 떠드는 사이에 이미 중국은 잠수함처럼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산업이 깨어나고 있다"며 "소니에너지텍이 후발주자인 산요전기에 밀려 몰락하게 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과 인정 두고 신경전·합의금 이견 있지만 가능성 가장 높아

마지막 시나리오는 가장 가능성이 큰 '양사 간 합의'다. 60일간의 심의 기간 내 두 기업이 합의하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

양사는 모두 합의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다만 합의를 위해서 두 가지 쟁점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양사 간 의견 차이가 큰 상황이다.

첫 번째 쟁점은 ITC 판결에 대한 승복 여부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상금에 손해배상을 포함할지,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 소송을 벌일지 등은 SK 협상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등 SK이노베이션에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이를 시인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수입금지 조치로 SK이노베이션이 당장 급한 상황에 직면한 것은 맞지만 직접 경쟁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밝히는 일은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큰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실제 "소송을 조기에 종료하고 산업 생태계 발전 및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협력해 나가자"고 했지만 향후 대응을 언급하며 ITC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합의금이다. 합의금이 상당한 금액일 것이라는 데에 대한 이견은 적으나 그 값이 얼마일지에 대해선 다양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대, SK이노베이션은 8000억원대의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합의금의 액수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신용등급이나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부정적 등급 전망에서 알 수 있듯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등급 수준에서 재정적 완충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로 인한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지출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도에 부담을 주고 신용등급에 대한 압박을 가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당장 두 기업이 내민 금액의 편차가 큰데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징벌적 손해배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거론되고 있는 국내 중재 기구 도입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양사 간 합의금 조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세 시나리오 중 양사 간 합의 가능성에 가장 무게를 두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행정부가 ITC 최종결정에 대해 인용 시 SK이노베이션의 항소는 가능하나 수입금지조치 효력은 항소절차 진행 중에도 지속되고, 거부권 행사 시에도 여타 소송 관련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다"며 "양사 간 소송 불확실성의 해소 차원에서는 합의가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두 기업은 ITC 최종 판결이 나온 지 일주일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 합의와 관련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은 문제들을 포함해 향후 양사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