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1.02.26 07:00

안전관리 프로세스 만들어 비슷한 사고 재발 방지에 전력…이재용 부회장 '무노조 경영 폐기' 약속 이행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삼성 디지털시티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 디지털시티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삼성그룹이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상생하는 노사문화를 구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삼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재해 사업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전사고 관리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안전문화 확산에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든 제조사업장을 대상으로 국제 안전보건 경영시스템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미비점들을 빠르게 고치고 있다. 만일 업무 중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부서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도 진행한다.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뿌리 뽑는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신년 시무식에서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사회적 요구에도 적극 부응해 신뢰받는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자"며 "특히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필수적인 가치임을 인지해 안전수칙 준수와 사고 예방 활동에 적극 동참하자"고 강조했다. 

김종근(왼쪽부터) 인사담당 상무, 김정란 노조 위원장, 김범동 인사팀장, 이창완 노조 위원장이 14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에서 열린 '단체협약 체결식'에서 단체협약안에 최종 합의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디스플레이)
김종근(왼쪽부터) 인사담당 상무, 김정란 노조 위원장, 김범동 인사팀장, 이창완 노조 위원장이 14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에서 열린 '단체협약 체결식'에서 단체협약안에 최종 합의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디스플레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 중재안 무조건 수용…11년 만에 마침표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경영체제 이후 상생하는 노사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로 '반도체 백혈병 분쟁 해결'과 '무노조 경영 폐기', '고공농성자 합의' 등이 꼽힌다. 이재용 부회장이 '뉴삼성' 경영에 속도를 내면서 그동안 그룹 총수의 결단 없이는 풀기 어려웠던 묵은 난제들이 속속 해결되는 모습이다.

특히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1월 삼성 5개 전자계열사 중 처음으로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다른 삼성 계열사에서도 노사 교섭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1월 역사적인 첫 상견례를 갖고 단체교섭에 돌입했으며, 삼성SDI 노사도 단체협상을 시작한 상태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경영체제 이후 반도체 백혈병 분쟁을 11년 만에 완전히 매듭지었다.

삼성 백혈병 논란은 2007년 3월 황유미씨의 죽음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황씨의 죽음 이후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가 발족했다. 반올림 측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전자·전기 계열에서 백혈병과 뇌종양, 유방암, 자궁경부암, 피부암 등을 호소하며 반올림에 신고한 피해자 수는 160명에 달하고 이중 약 60명은 사망했다"면서 삼성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백혈병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장기간 이어지던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삼성전자가 2018년 7월 조정위원회의 최종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하면서다. 당시 삼성전자의 중재안 수용 배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 부회장은 삼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두고 해묵은 분쟁의 해결을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11월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후속 조치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1월 위원회가 발족한 후 2020년 5월 말까지 모두 400건의 보상 대상에 총 142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큰 부담 하나를 내려놓으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행보에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노조 와해' 논란에 무노조 원칙 폐기…건전한 노사문화 정착 '앞장'

이재용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 이후 삼성 계열사에 노조가 잇따라 설립되고 과거 해고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중단하는 등 그룹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해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는 말로 유명한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다. 일부 계열사에 노조가 생긴 적은 있지만,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방해로 제대로 된 노조 활동은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올해 2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줄줄이 유죄가 확정됐다. 삼성에서 노사 문제로 전·현직 직원들이 구속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다"면서 "앞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는 입장문을 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 와해' 논란이 불거진 뒤 협력사 직원 8700여명을 직접 고용하고 합법적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 계열사가 노조를 인정한 첫 사례다.

2019년 11월에는 삼성전자에도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노조가 설립됐다. 삼성전자에 전국 단위 노조를 상급단체로 둔 노조가 설립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화재 등 삼성 계열사에서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잇따라 출범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강남역 철탑 위에서 1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인 김용희씨가 삼성과의 합의로 농성을 중단했다. 지난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면서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당시 삼성전자 측은 입장문을 통해 "회사는 김용희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면서 "앞으로 보다 겸허한 자세로 사회와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안전한 일터 만들기와 선진 노사문화 구축과 관련한 삼성의 움직임이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특히 이 같은 변화가 이재용 부회장 경영체제 이후 더욱 가속화하면서 삼성의 새로운 문화로 확고히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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