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3.06 08:00

중수청법 근간은 '수사-기소 분리'지만 SFO는 수사-기소권 모두 부여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개혁 시즌1이 마무리된 데 이어 올해들어 가시화하고 있는 검찰개혁 시즌2는 작년보다 더 거센 급류를 타고 있다.

지난 2월 8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중수청법)을 대표 발의한 이후 거세진 파고는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지며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중수청법' 발의자 황운하 의원 "중수청 모델은 영국 SFO"

윤 총장 사퇴의 단초가 된 것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다. 검찰 내외부에서도 중수청 설치는 곧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개혁 시즌2의 화두가 되고 있는 중수청법은 수사-기소 분리를 근간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찰에 잔존한 6대 중대범죄 수사권을 중수청으로 옮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황운하 의원 등 중수청법 제안자들은 "우리나라는 검찰에 막강한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됨에 따라 이를 악용한 각종 권한남용과 부패비리 사건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갖는 신뢰도가 매우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사법절차에서의 수사구조를 재설계해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원칙 아래 수사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권은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권력 분산에 더해 이러한 방향이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수청법의 대표 발의자인 황 의원은 법안 발의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의 중수청은 영국의 SFO를 모델로 한다. 영국에는 이미 중대범죄를 다루는 특별수사기관이 설치돼 있는데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SFO 탄생 배경은?…복잡한 경제범죄 전담 위해 수사-기소권 모두 부여 

영국의 SFO는 'Serious Fraud Office'의 약자로, '중대비리수사청'으로 풀이되는 영국의 특별사법경찰 조직이다. 여권은 SFO를 예로 들며 중수청이 중대범죄만을 전담하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SFO와 중수청은 전혀 다르다는 반박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 'Serious Fraud Office'. (사진=Serious Fraud Office 홈페이지 캡처)

영국의 수사기관 형태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다소 균형이 맞춰지긴 했지만 통상적으로 검찰이 경찰보다 더 강한 권한을 가진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수사를 진행할 때 검찰이 아닌 경찰이 주역을 맡는다.

또 여권이 연일 언급하듯이 영국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어 있다. 1985년 범죄 소추법(Prosecution of Offences Act) 제정 이후 영국 국립 검찰청이 창설되면서 영국에서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중대 부패 범죄 및 강력사건)은 검찰이 갖게 됐다. 그렇기에 검찰개혁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와 여당은 이상적인 '선진국 모델'로서 연신 영국을 꼽고 있다.

하지만 SFO의 출범 계기를 살펴보면 여당이 중수청법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SFO는 1970~80년대 런던에서 심각한 금융 범죄 등이 잇달아 발생하자 이를 전담하기 위해 1987년 설립됐다. 

SFO는 사안이 중대하거나 복잡한 경제·뇌물범죄, 부패사건 등의 수사와 기소를 모두 도맡고 있다. 이런 권한을 준 것은 영국의 기존 수사-기소 분리 체제에서 복잡한 경제·부패 범죄를 원활히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기관을 신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검찰 또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현 정부가 SFO를 모델로 중수청을 설치한다는 주장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 석 달 전 "권력기관 개혁 완성" 강조…'검수완박' 걸림돌은 보선

일각에서는 여권의 중수청법 강행 추진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공수처 출범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력기관 개혁이 완성됐다고 공언했음에도 굳이 중수청까지 출범시키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5일 제61회 국무회의에서 공수처 출범을 명시하는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경찰법,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 등 권력기관 3법을 통과시키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오랜 숙원이었던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가 드디어 완성됐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검찰개혁 시즌1의 결과물로써 탄생한 공수처의 수장 또한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일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게 되면 공소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공소 유지가 제대로 안 되면, 무죄가 선고되어선 안 되는 사건도 무죄가 나올 수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적과 함께 윤 총장이 실제로 사퇴를 선언하고,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민주당은 잠시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윤 총장이 이달 들어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등 '검수완박'에 맹공을 가해 여론전에 나섰고, 끝내 사퇴까지 한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검찰개혁 갈등이 이미 지난 1년 내내 지리하게 이어져 국민적 피로감이 높은 가운데 윤 총장 사퇴 이후에도 이를 물고 늘어지면 역풍이 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욱이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비교적 낮기에 미세한 차이로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만큼 민주당이 작은 리스크 하나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수청법, 결국은 추진될 가능성 커…'권력 수사' 향방은?

다만 중수청법 입법은 잠시 미뤄졌을 뿐 끝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일 윤 총장의 사의 표명에 앞서 열린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정돈된 상태에서 법안 발의를 하겠다"는 취지의 논의가 이뤄졌다. 당초 2~3월로 예정됐던 발의 계획을 선거 이후로 미룰 뿐 입법 자체는 뜻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와대의 반응도 중수청법 입법에 다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윤 총장의 사의 표명 이후 문 대통령은 약 1시간여만에 사의를 수용했고, 검찰 출신인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사표도 곧바로 수리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신속한 행보는 임기를 1년여 남긴 상황에서 검찰개혁 갈등을 빠르게 마무리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한편 검찰 내부에서는 그간 윤 총장의 지시 하에 진행됐던 권력 대상 수사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대전지검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서울중앙지검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원지검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일부 공수처 이첩) 등 정권과 관련해 민감한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며 권력 대상 수사를 독려해왔던 윤 총장이 물러나면서 차기 총장이 누구냐에 따라 권력 수사 결재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 등이다. 이 지검장이 수사팀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기소 의견, 한동훈 검사장 무혐의 의견 등 특정 사건의 결재를 미루고 있듯 이 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권력 수사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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