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3.04 15:44

'중수청' 설치 명분 확보에 부담…강행땐 '무소불위 권력 휘두른다' 역공 가능성
4·7 보선에도 악영향 우려…당분간 사태추이 관망하며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듯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2시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며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터넷언론인연대)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총장직 사의를 전격 표명한 가운데 여당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의 향방으로 다시금 눈이 쏠리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 등으로 검찰 권한 분산에 힘을 쏟아왔던 당정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내세우며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수장으로서 대립을 이어왔던 윤 총장의 공백은 어떤 방식으로든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서다.

윤 총장은 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간 윤 총장과 날을 세워왔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개혁 추진의 '명분'을 확보하는 데서는 다소 골치가 아플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윤 총장의 사의 표명 이후에도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폭풍전야의 침묵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사진=KTV국민방송 캡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사진=KTV국민방송 캡처)

지난해 공수처를 쟁점으로 한 '검찰개혁 시즌1'이 공수처 출범으로 마무리됐다면 올해 초부터 시작된 '시즌2'는 중수청을 골자로 한다.

윤 총장은 1년 내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며 징계까지 받았지만 당시에도 사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중수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중수청법)을 지난달 대표 발의한 이후엔 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윤 총장이 '사퇴'라는 초강수를 둔 만큼 중수청 설치는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한 발더 나아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이른바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을 갖게 됐다. 중수청이 설치될 경우에는 이 6대 범죄 수사권이 중수청으로 옮겨지고, 검찰에 남는 권한은 공소제기와 유지 및 영장청구 권한뿐이다. 그간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권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에 중수청법 발의 이후 윤 총장을 비롯해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수사-기소 분리 불가론을 내세웠다. 윤 총장은 중수청을 바탕으로 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고 치부하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검찰의 수장인 윤 총장이 전격 사의를 표한 당일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앞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수사-기소 분리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충분히 소통하겠다. 정돈된 상태에서 법안 발의를 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윤 총장의 사퇴로 인해 위험 부담이 다소 더 커진 만큼 중수청 설치를 비롯한 수사-기소 분리를 강행 추진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의 공백을 틈타 입법을 시행할 경우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역공을 당할 수 있고, 불과 한 달을 앞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윤 총장이 실제로 사퇴를 하더라도 일단 한발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명분 확보의 문제일 뿐 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윤 총장의 사퇴 선언 이전 청와대는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국회는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윤 총장의 강경발언을 우회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180석의 거여(巨與)인 민주당이 잠시 숨을 고른 뒤 중수청법 입법을 밀어붙인다면 종래에는 '검찰개혁 시즌2'도 당정청의 뜻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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