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4.25 17:28

불어나는 부실채권, 국책은행만으로 감당 어려워...채권·주식시장이 제대로 작동돼야

문제는 금융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선제적 금융구조개혁 시점을 놓칠 경우,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실기업 몇 개 정리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기금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정부는 사실을 숨겼다. 결과는 참혹했고 정권은 식물화됐다.

금융구조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눈가리고 아웅’식의 구조조정안으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의 가속 폐달을 밟고 있는 조선업종의 경우 이미 대우조선해양에 물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금이 수조원이다.

금융업계에 메스를 데지 않고 M&A(인수합병)를 통한 구조조정 방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 중앙은행이 나서야 할 때”라며 “대출과 금리를 조정 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이 직접 나서, 방향을 제시해야만 문제의 근원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락하는 금융산업 내버려 둘텐가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발표한 ‘국내은행의 지난해 영업실적 잠정치’를 보면 국내은행의 지난해 대손비용(충당금)은 11조7000억원에 달해 전년대비 2조5000억원(27.17%)이나 증가했다.

국내 은행의 대손비용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었다. 시중은행을 지켜주고 기업을 보존해줘야할 국책은행이 오히려 사고를 친 셈이다.

이들 국책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 등 기업 부실 여신이 늘면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중심으로 대손충당금이 급증한 탓이다.

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산업은행의 실적도 빨깐불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자회사로 편입된 대우조선해양 투자손실이 겹치면서 1조5000억원 규모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지난해말 대우조선에 6200억원을 지원했다.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지다. 자본잠식 상태인 성동조선해양의 대주주(보유지분 70.71%)인 수출입은행은 부실채권 규모가 안정 수준을 넘어서 올해 산업은행으로부터 증자를 받아야 할 형편이다.

기업 자금 조달창구가 막혔다

기업 자금의 동맥경화가 발생한 건 주식과 채권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재정난의 해결사로 오로지 국책은행만이 존재할 경우, 이런 국가의 경제는 이미 부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선‧해운 업계에 경고 등이 켜진 것은 이미 3년이 넘어섰다. 이 기간 기업들은 민간은행이나 채권 시장에서 자금조달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부실기업의 국책은행 쏠림 현상은 이제 국가 위기 상황을 점검해야할 시점까지 이르게 됐다.

민간은행이 대출을 기피하면서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 부담이 국책은행으로 쏠리고 있는 만큼 국책은행 부담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전체 기업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30%를 훌쩍 넘어섰다. 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통로인 주식과 회사채 시장이 경색돼 있는 것도 국책은행 쏠림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시중 자금을 확대시켜 채권과 주식시장에 자금이 돌게 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 20조원이 넘는 현대중공업도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조선, 해운, 건설, 석유화학, 기계 등 경기민감업종이라고 하면 기관이건 개인이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한국은행이 금융구조개혁 앞장서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2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한은이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가 구성되는 등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한국은행 역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이 올 경우 기업에 대한 한국은행이 나서 금융 중개대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 진전된 한국은행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과 해운 업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산업은행은 물론 국책은행과 보험공사 등의 자금 지원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책은행들이 이미 조선과 해운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 또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통화량 확대가 필요하다”며 “한국은행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갖고 금융 구조개혁에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부실 규모를 키운 금융기관의 수장들이 아직도 자리에 앉아, 부실을 더 키우는 경우가 있다”며 “과감한 인적쇄신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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