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3.12 20:00

LH·김학의 사건 시작부터 거센 풍랑…"권력 분산 장점보단 수사권 약화 단점 더 뚜렷하게 부각"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권력기관 개혁'의 첫걸음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우왕좌왕'이다.

지난 8일 법무부가 2021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권력기관 개혁 전후를 비교한 체계도에 따르면 기존 체계에서는 대통령 휘하에 법무부-검찰청과 행정안전부-경찰청, 국가정보원만으로 구성됐던 권력기관 체계도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경찰 내부 조직 분화, 검찰 조직 분화 등을 통해 다소 복잡해졌다.

정부는 이러한 분화에 대해 '권력기관 개혁 완성'으로 자평하고 있지만 아직은 권력 분산의 장점보다는 수사권 약화의 단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사권이 분산된 이후 경찰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사건,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로 첫 시험대에 올랐지만 두 기관 모두 시작부터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권력기관 개혁 이후 개편된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검찰·경찰 체계도. (사진제공=법무부)
법무부가 공개한 권력기관 개혁 이후 개편된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검찰·경찰 체계도. (사진제공=법무부)

◆LH 사건, 1주 걸린 '반쪽짜리' 압수수색…합조단 조사 적발도 '고작' 0.05%

LH사건과 같은 신도시 땅 투기 사건의 경우 지난 1·2기 신도시 때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이번 광명·시흥 3기 신도시 사태는 '6대 중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검찰이 수사에서 배제되고 경찰청 국수본이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의 지휘를 맡게 됐다.

LH 수사는 시작부터 잡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는 총리실 주도하에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가 LH 직원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투기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곧바로 수사권이 있는 경찰의 지휘하에 전면 수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오자 '맹탕 조사'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합조단의 1차 조사는 국토부 직원 4509명, LH 직원 9839명 등 1만43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LH 투기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시민단체가 공개한 13명에서 불과 7명이 추가되는 데 그쳤다. 시민단체 공개 13명을 제외하면 1차 조사에서 적발된 인원의 비율은 전체의 0.05% 수준이다.

부랴부랴 시작된 경찰의 조사에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LH 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 2일인데, 경찰은 일주일 뒤인 9일에서야 LH 본사와 피의자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핵심적인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가족·지인 등을 통해 신도시를 비롯한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상 여당이 만들어낸 국수본, 여당과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정부 부처가 진행하는 수사·조사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LH 사건에서 검·경의 유기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지난 11일 검찰과 경찰은 부동산 투기사범 수사기관협의회를 열고 경찰의 직접수사, 검찰의 법리검토·공소유지라는 역할을 분명히 했다. 검·경 간 핫라인 설치 등 협력을 강화하고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권 발동이 가능한 혐의가 포착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뒀다.

하지만 검찰을 뒤로 밀어놓고 부동산 범죄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수처, '김학의 사건' 받은 지 9일 만에 검찰 재이첩…수사에 제동 건 꼴

권력 대상 수사를 전담해야 할 공수처의 경우도 출범 후 첫발을 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당초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김학의 사건)를 맡고 있던 수원지검은 지난 3일 사건의 일부를 공수처에 이첩했다.

공수처로 넘겨졌던 부분은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진상조사단 검사가 과거 사건번호와 가짜 내사번호 등을 이용해 김 전 차관의 출국 금지를 신청했다는 의혹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정보 유출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공수처법 25조2항의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사건이 공수처로 넘어간 당일 김진욱 공수처장은 "사건을 묵히지 않겠다"며 빠른 대응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사안이 복잡한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3일 사건이 이첩된 후 열흘 가까이 사건 처리 여부를 두고 자료 검토만을 진행했고, 12일 결국 검찰로 사건을 재이첩했다. 

김학의 사건 재이첩에 대해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가 수사하는 것이 공수처법의 취지에 맞지만 수사에 전념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검찰이 사건 이첩 이전 이 검사를 수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가 붙었던 것에 강하게 제동이 걸렸다는 점은 명백하다.

공수처의 수사 처리 여부 검토를 두고 무려 9일이 낭비된 셈이다. 이 지검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음에도 여전히 국내 최대 지방검찰청의 수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수사에 이같이 지연이 생긴 것은 결론적으로 증거를 인멸할 기회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사건의 당사자인 이 지검장과 이 검사 모두 본인들의 사건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선 '공수처가 수사하는 것에 믿는 바가 있는 건가'라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과 공수처 모두 첫 시험에서 사실상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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