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03.14 08:00

"1차 발표 국민 의혹 말끔히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구매 경위까지 파헤쳐야"
통합이전 상황으로 회귀…공공개발과 주거복지 업무 분리·인력 감축 등 도마에

LH본사 사옥 (사진제공=LH)
LH본사 사옥 (사진제공=LH)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정부가 지난 11일 공직자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사태의 실체가 극히 일부만 드러났을 뿐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3기 신도시 외에도 현 정부가 조성한 모든 신규택지와 산업단지, 그 배후지 중 개발압력으로 시세가 급등한 지역으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강력한 혁신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오는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서는 LH를 해체 수준으로 분리하거나 3기 신도시 사업 추진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신규택지·산업단지도 조사해야" 여론 비난의 목소리 나와 

정부는 지난 11일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에 대한 공직자 재산 현황 전수조사 결과 총 20명이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경찰에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광명시와 시흥시가 자체 조사로만 투기 의심 공무원이 14명이나 됐다고 했는데, 정부가 합조단을 구성하고도 7명을 추가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조사 대상이 된 이들 8개 택지의 면적만 4900만㎡가 되지만 7명 밖에 더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인근 다산신도시 아파트 등 주택을 거래한 국토부 25명과 LH 직원 119명 등 144명도 추려내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지만 현재로선 단순 참고자료 형태다. 

국토부 공무원과 LH 직원 본인에 대한 조사 결과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투자했는지는 더 조사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또 관련된 지방자치단체나 다른 지방공기업 등의 직원과 가족들에 대한 토지 거래 조사가 예정된 만큼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광명 시흥지구에서만 14명의 지자체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 땅을 산 것으로 줄줄이 드러났다. 조사 대상 지역도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국민의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높다.

현 정권에서 주거복지로드맵이나 수도권 30만호 건설 계획 등으로 조성이 추진 중인 택지까지 다 합하면 7200만㎡에 달한다. 신규 택지 중 신도시급이 아닌 중소 규모 택지 2300만㎡가량은 아예 조사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형 택지보다는 중소 규모 택지가 지정되기 전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무원이나 LH 등 공기업 직원이 땅을 샀다면 더욱 구매 경위를 파헤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외에도 지자체가 자체 추진 중인 개발 사업도 부지기수인데, 벌써 어느 땅이 개발되기 전 누가 땅을 샀느니 하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다.

개발 사업이 이뤄지면 해당 토지는 공시가 수준으로 강제수용당하는 것이니 투기로 돈을 버는 것은 그 외곽 토지 소유자다. 기존 3기 신도시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경계 외곽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3기 신도시는 대부분 그린벨트를 풀어서 추진되는 사업이다 보니 반사이익을 얻을 주변 지역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산업단지 지정 전 개발 소식을 듣고 마구잡이 투기 행위가 벌어지는 데 대해 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직자들이 은밀히 '투자클럽'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면서 법인을 만들거나 친척이나 지인 등 차명으로 투자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만큼 관련자에 대한 계좌추적 등 강제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국가 개발 사업을 계기로 지가가 급등한 지역도 많다. 제주도는 제2공항 추진으로 땅값 상승률 1위 자리를 수년간 차지했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인근 지역도 투기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공직자 땅 투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계좌추적 등 강제수사를 통해 공직자와 지인 간 수상한 자금흐름을 잡아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LH 내부에선 일부 직원들이 투자클럽을 만들어 토지 투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광명 시흥에서도 직원들이 수명씩 몰려다니며 땅을 함께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LH 직원투기 의혹에 대한 정부 1차 합동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무조정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LH 직원투기 의혹에 대한 정부 1차 합동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무조정실)

내부 통제와 관리에 심각한 문제 드러난 LH…공공개발 영역과 주거복지 업무 분리 의견 나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폐단이 나오는 LH를 해체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LH는 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 공기업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대한주택공사(주공)와 한국토지공사(토공)가 합병돼 탄생한 공기업이다. 이후 LH는 신도시 등 택지개발에서 공공주택 건립에 이르기까지 공공 부동산 부문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최일선에서 집행해 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원 9500여명에 자산 규모만 184조원에 달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공적 기능을 대폭 강화하면서 LH 조직을 더욱 키웠다. 출범 당시 6000명 수준이었던 직원 숫자는 현재 1만여명으로 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을 근거로 토지 취득부터 택지 조성을 통한 개발과 분양 업무는 물론 강제수용과 독점개발 등의 권한까지 행사하고 있다. 직원 1인당 평균 보수(공기업 경영평가 성과급 제외)는 2019년 기준으로 약 6890만원이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11일 "LH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기존의 병폐를 도려내고 환골탈태하는 혁신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내부 통제와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공룡 조직을 수술대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도 지난 12일 열린 제16차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에서 "LH에 대한 강력한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LH 조직은 어떤 식으로든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땅투기 사건 후 국회를 찾아 LH가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많았다고 인정하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규 택지 조성부터 분양, 주거복지 등 거의 모든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현 LH의 비대한 조직으로는 새로운 주거복지 시스템을 유연하게 정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변 장관의 발언은 변화한 주거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LH의 기능과 위상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LH의 공공개발 영역과 주거복지 업무를 분리하고, 인력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예컨대 주거복지, 택지개발, 도시재생, 도심정비 등으로 기능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다. 일각에서는 주공·토공 분리 등 통합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도 나온다.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에서 LH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택지조성·주택 공급을 제외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까지 영역을 늘리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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