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안나기자
  • 입력 2016.04.25 17:23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자기 의무를 등한시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한 암묵적인 담합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가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김 교수는 "기업의 대주주는 경영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구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노동조합은 해고되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채권금융기관은 채무자의 채무변제능력이 크게 저하된 경우 채무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채무재조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주요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암묵적 담합구조를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의 지적대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번 불거지는 기업 오너와 대주주의 모럴해저드 사례가 딱맞춰 드러났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과 그의 두 자녀가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직전 보유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을 무리하게 확장해 부실을 키웠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최 전 회장이 사재 출연이 필요하다는 여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보유주식까지 전량 팔아치운 것을 어느 누가 고운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철저히 조사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엄벌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끝까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를 저지른 대주주도, 국책은행을 통해 수조원씩 세금을 퍼주며 부실 규모를 키운 당국자들도 다 빠져버리고 결국 착실하게 세금 내는 일반 국민들만 부담을 지게 되는 과거 사례를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이 지난 2013~2014년 2년간 1조8000억원의 적자를 내는 어려운 상황에서 보수와 퇴직금 명목으로 97억원을 받아간 것으로 드러나 더한층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도 지난해 11월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지분을 사주고 돈을 빌려주면서 200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등 부실 계열사 지원으로 그룹 전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의 구조조정 과정과 관련해 "기존의 주주와 채권단의 경우 손실부담의 원칙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대주주의 모럴해저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참에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재벌 오너에게 물어 경영권을 박탈시켜야 한다거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사재 출연 등 오너의 고통 분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강력한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의 경영 방식을 답습해 사태를 심각하게 키웠다”며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오너들이 경영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은 25일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신청서와 함께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도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조 회장측이 사재 출연 등 현대상선(현정은 회장의 300억원 사재출연) 수준의 자구계획안을 제출하지 않아 신청서를 반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손실분담이나 자구노력을 선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여론이 예전과는 다르다. 모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주주들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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