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안나기자
  • 입력 2016.04.26 16:21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불과 2년 만에 40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서 흔들림 없는 지위를 유지해오던 사우디는 ‘저유가의 저주’로 재정압박에 시달리게 되면서 최근들어 경제 곳곳에 위기 신호가 켜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외화·자국화 표시채권 발행등급·IDR)을 'A+'에서 'A-'로 두단계 낮췄다. 단기 신용등급도 'A-1'에서 'A-2'로 한 단계 강등했다. S&P 측은 "유가 하락으로 원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의 재정·경제 지표가 지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25년만에 국채 발행 · 아람코 지분도 매각

사우디는 최근 JP모건, HSBC 등 글로벌 은행들로부터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의 5년만기 대출을 받기로 하면서 25년 만에 채무국이 됐다.

사우디 정부가 외국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여파로 10억 달러를 조달했던 1991년 이후 25년 만이다. 사우디는 대출에 이어 국제 채권 시장에서 국채도 발행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대출은 사우디가 외국 자본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25년만에 채무국이 된 것은 전적으로 유가 하락 때문이다. 사우디는 저유가로 2014년 말 이후 올 2월까지 외환보유액이 1500억달러(약 170조원)가량 줄어들었으며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9%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우디의 외환 보유액은 아직 5000억 달러가 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곳간이 순식간에 마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우디는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12%를 담당하는 거대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지분도 매각할 계획이다. 아람코가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시가총액이 수조달러에 달해 사우디 정부가 소량의 지분만 매각하더라도 큰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오는 2018년까지 아람코 지분 5%를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올해 예산도 지난해 대비 14%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국방비 3.6% 축소, 국민 보조금 삭감 등의 계획도 포함돼 있다.

사우디 경제가 이처럼 급작스럽게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원유 의존도가 워낙 높은데다 재정균형 유가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3000만명의 국민 복지를 위해 필요한 재정 균형 유가가 100달러인데 비해 주변국인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45~55달러에 불과해 사우디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사우디 금융지구’ 공사도 재정난으로 올스톱

저유가에 따른 재정난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뉴욕월스트리트를 넘어서겠다는 야심찬 목표아래 건설을 시작한 리야드 소재 ‘킹압둘라 금융지구’ 공사도 올스톱됐다.

당초 내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이 공사는 총 160만㎡ 부지에 78억달러를 투자하는 중동 최대 규모 금융센터 건설공사로 사우디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73개 주거·오피스빌딩, 전시장, 호텔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현재 70%가량 작업이 진행됐는데 주요 투자사인 사우디 국민연금 관리기관(PPA)이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공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로 인해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됐다. 현재로서는 공사 재개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피해 확대가 우려된다. 게다가 설령 정상적으로 완공되더라도 현지 경제사정상 임대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대규모 공실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금융허브 꿈은 ‘신기루’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석유중독’ 탈피·포스트 석유시대 경제개혁안 발표...실현 가능성은?

페트로달러 체제가 위협받고 있음을 절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부랴부랴 경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사우디가 원유시장에서 영향력이 줄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 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사우디 국영 석유사 아람코의 수장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모하메드 빈 살만 부왕세자는 25일 아랍 방송 '알 아라비야(Al-Arabiya)'를 통해 비석유산업 진흥을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안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석유에 중독됐다. 2020년까지 석유가 없어도 되도록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비전 2030’의 가장 핵심적은 내용은 세수의 70%를 원유에서 얻던 사우디가 원유로 먹고 살던 기존 시스템 대신 2030년까지 GDP에서 비원유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16%에서 50%로 늘리고 민간 부문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현 4%에서 40~65%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아람코 지분 매각 방안도 2~3조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민간부문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사우디의 이번 경제개혁안은 걸림돌이 너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높다.

무엇보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석유중독’을 불과 4년만에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혹이 앞선다. 또 고작 4%인 민간부분을 40~65%로 끌어올리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런던경제대학의 스테펜 헤르토크 교수는 “사우디 기업의 대부분이 국영기업이고 전체 노동자의 3분의2가 공공부문에서 근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개혁안에 따라 공공부문이 축소되고 추가 긴축이 이뤄질 경우 국민들이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부문 축소는 임금감소와 가계지출 감소로 이어져 GDP가 쪼그라드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돼 현 구조로는 민간기업의 생존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사우디가 지난 1970년부터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한 각종 노력을 해왔지만 실패한 이유는 정부가 경제구조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고 노동시장이 공공부문에 몰려있는 구조적 장벽 때문이었던 것으로 지적된다. IMF도 지난해 12월 사우디의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걸프리서치센터의 존 스파키아나키스 연구원은 “짧은 시간에 민간부문이 활성화되고 공공부문이 줄어든다면 국민 불만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며 “경제개혁을 이루려면 정부뿐 아니라 전 국민과 민간부문의 전적인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