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상근기자
  • 입력 2016.04.26 18:06

대주주, 채권단 책임규명 우선론 대두

정부는 26일 국책은행에 재정 등을 보충해 한계대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정부가 한계 대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다. 결국 수십조원대 혈세를 경제안정, 대량실업 방지 등의 미명아래 다시 또 부실기업 회생에 쏟아붓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계기업 구조조정 재원 조달 방안과 관련 "기재부와 한은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필요재원을 정부의 재정지원과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 등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을 공개한 자리다.

◆파악안되는 부실 규모

정부는 아직 구체적 협의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국민의 혈세인 재정과 통화당국의 발권력으로 국책은행의 자본력을 늘려 이를 토대로 부실채권을 처리한다는 생각이다.

시중은행에 앞서 국책은행이 추가손실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사전에 갖춰 관련 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 명분이다. 여기에는 대량실업을 가능한 줄이고 국가 주력산업군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도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는 정확한 자본확충 규모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 임 위원장도 이날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필요한 재원 규모를 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권에서 추산하고 있는 1차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 해운업계 부실규모는 22조원대이다.

대우조선해양에만 금융권의 위험노출 여신을 가리키는 익스포저가 21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84%에 이르는 18조3000억원이 특수은행 여신이며 수출입은행 12조5000억원, 산업은행 4조1000억원을 떠안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도 2조원대의 여신이 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익스포저 규모가 1조7700억원이며 이 가운데 70% 이상을 특수은행이 안고 있다.

◆국책은행 지원 집중된 조선·해운

국책은행은 전통적으로 조선, 해운 등 중후장대산업에 대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같은 특성상 정부 주도 아래 업계 구조조정을 본격화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혈세가 투입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여력이 그다지 넉넉지 못하다는데 있다. 작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산업은행 14.2%, 수출입은행 10.0%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출자를 거론했듯이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되면 곳간은 금새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여신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작년에만 3조2000억원대 충당금을 쌓았고 1조89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3년간 모두 2조7000억원대 적자를 봤다. 부실채권(NPL)은 작년 기준으로 7조3270억원에 달한다.

수은은 지난해 당기순익이 411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지난해 정부로부터 1조1300억원을 출자받아 자본여력을 늘렸다. 앞서 3년동안 수은은 1조4893억원을 출자받은 바 있다.  성동조선을 비롯 군소조선사 등의 부실에 자본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여기에 더해 조선, 해운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필요재원은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현재 정상으로 분류해둔 기업들의 신용도가 대거 C등급으로 떨어지면 국책은행의 충당금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디스는 26일 국책은행의 자본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져 부실기업 지원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경고했다.

◆공적자금 앞서 책임논란 불가피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두달여간 산업, 수출입, IBK기업 등 3개 은행이 출자하고 있는 회사에 대한 실지감사를 벌였다. 이미 국책은행 여신의 종기가 곪을대로 곪은 시점이다.

국책은행의 대출금이 정부를 대신해 성장기업의 버팀목이 되고 미래산업의 육성에 사용돼야 하는데 그 목적을 벗어나 전용된 사례가 곳곳에서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이번에도 국민혈세를 부실기업의 생명줄 연장과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 돼버린 대기업 오너, 방만한 경영으로 일관한 채권은행들의 안위에 쓰일 것이란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여소야대 정가에서는 당장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앞서 책임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본확충에 앞서 구상권 행사는 물론 해당기업과 채권단의 고통분담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민의 당은 이날 자본확충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정부와 한은이 참여하면 기업 대주주와 채권단의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며 이를 우선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때문에 책임 논란 및 구조조정 재원조달과 관련한 진통은 박근혜 정권 후반기와 여소야대 정국상황과 맞물려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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