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27 15:45
고슴도치의 모습이다. 그 등 위에 얹은 아주 많은 바늘이나 가시처럼 하찮은 일이 셀 수 없이 많이 벌어지는 경우를 위집(蝟集)이라는 한자 낱말로 적는다.

동물의 어떤 자세나 행위 등을 표현하는 한자 단어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낭자(狼藉)다. 이리 또는 늑대를 일컫는 한자가 낭(狼)이다. 이 동물은 대개 조그만 동굴을 만들어 그 곳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보통 마른 풀을 그 밑에 깐(藉) 뒤 생활한다. 낭자는 원래 이리나 늑대가 웅크리고 앉았던 자리를 지칭했다.

이리나 늑대가 일어나면 그 마른 풀 자리는 쉽게 엉클어진다. 그 상태를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낭자하다’는 형용을 얻은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말미에 “고기와 과일안주가 다 하고, 술잔과 접시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肴核旣盡, 杯盤狼藉)”는 표현으로 유명해진 단어다. 그러나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먼저 등장한다.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달(水獺)이라는 동물은 ‘욕심꾸러기’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잡아들인 물고기를 물가 바위 위에 죽 늘어놓는 버릇이 있는데, 이 모습을 사람들은 ‘수달이 제사 지낸다(獺祭)’로 표현한다. 욕심을 부려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남발한 문장, 또는 그러는 사람이다. 수달의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닐진대, 사람들이 덧붙인 말이다.

재빨리 뛰는 행동에서는 토끼가 우선 눈에 띈다. 사람이나 천적(天敵)이 다가가면 잽싸게 뛰어 달아나는 행동은 토탈(兎脫)이라고 한다. 잽싸기가 눈 한 번 감았다 뜨고, 숨 한 번 쉬는 순식간(瞬息間)과 흡사하다는 형용이다.

도망치는 행위에서는 쥐도 사람들의 입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척을 감지하면 바로 구멍으로 파고드는 쥐의 행위는 ‘서찬(鼠竄)’이다. 찬(竄)이라는 글자는 구멍을 뜻하는 혈(穴)과 쥐를 의미하는 서(鼠)를 한 데 섞어 만들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위라면 포두서천(抱頭鼠竄)으로 적는다.

귀하지 않은 일, 얽히고설키는 많은 잡사를 쓸 데 없이 많이 몸에 지니고 있는 상태를 표현할 때는 고슴도치(蝟)가 나온다. 등에 잔뜩 난 바늘을 표현하는 말이 위집(蝟集)이다. 잡다한 일이 많이 모이는 상황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오합(烏合)이라는 말 자주 쓴다. 까마귀(烏) 모임(合)의 뜻이다. 까마귀는 시끄럽다. 먹이를 보면 새카맣게 모여들어 시끄럽게 울어대다가 금세 흩어진다. 뭔가 얻으려고 쉽게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집단,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무리를 오합지중(烏合之衆), 군대의 경우라면 오합지졸(烏合之卒)로 적는다.

집권 여당이 4.13 총선 참패 뒤에도 여전히 소란하다. 민심의 향배를 읽지 못해 처참하게 패배한 총선에서는 ‘유혈(流血)이 낭자’했고, 계파끼리 부린 욕심은 ‘수달이 제사 지내는 동작’과 흡사했다. 총선 뒤에도 민의의 날카로운 지적을 회피하려는 모습은 재빨리 달아나는 토끼와 쥐를 닮았다.

삼가지 않고 마구 해대는 거친 말솜씨, 그로써 자꾸 벌이는 분란은 등에 잔뜩 바늘을 얹고 사는 고슴도치를 연상시킨다. ‘친박’이네, ‘비박’이네 하면서 총선 뒤에도 여전히 짧은 이해만을 다투며 분란을 거듭하는 모습은 시끄러운 까마귀 떼를 빼닮았다.

그러다가 조금 제 뜻을 이룰 때는 영락없는 참새다. 기뻐서 폴짝거리며 뛰는 모습이 환호작약(歡呼雀躍)의 성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려고 열심히 움직이는 동물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하염없이 다투고 싸우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거듭하는 우리 정치인을 이들에 견주는 일이 어쩐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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