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28 16:56
창덕궁에 있는 보춘정의 모습이다. 궁궐 안의 정자라 복잡하게 생겼다. 언덕 위의 풍광 좋은 곳에 사람들이 발길을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한 건축이 정자다.

앞의 덕계(德溪)와 같은 덕(德)을 지녔으니 그와는 ‘형제 역’이다. 역시 인근의 일부 지역과 합쳐지면서 지금의 동명을 얻었고, 전철 역명으로도 자리 잡았다. 덕계동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양주군 어등산면(於等山面) 2리 및 3리와 천천면(泉川面) 덕정리 일부 지역이 합쳐진 뒤 지금에 이르렀다.

앞의 글자 德(덕)은 앞의 덕계역에서 설명을 했다. 그러니 다음 글자 亭(정)이 이번 역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다. 우리는 이 글자를 흔히 정자(亭子)의 뜻으로만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첫 출발은 그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글자다.

우선 亭(정)은 옛 동양사회에서 문서와 명령, 공무(公務)로 사람이 움직이는 이동 및 전달 체계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역곡(驛谷) 등의 역에서 풀어간 역참(驛站)에 관한 내용이다. 과거 동양의 왕조는 행정의 필요 때문에 문서를 지방에 전달하거나, 지방의 공문(公文)을 중앙으로 전달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했다. 벼슬에 오르는 자, 수도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자, 행정의 필요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오가는 자, 공문을 이리저리 전달하는 자 등을 위해서도 꼭 있어야 했던 체계다.

바로 역참(驛站), 우역(郵驛), 역전(驛傳), 우체(郵遞) 등으로 불리는 교통 및 숙박, 문서 전달 시스템이다. 이곳에서는 말과 마차를 준비해 두고 공무로 오가는 인원에게 그를 제공했다. 아울러 숙박(宿泊)시설도 갖춰 그런 이들에게 묵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시설의 한 명칭이 바로 亭(정)이다. 원래는 그랬다는 얘기다.

이 亭(정)은 따라서 역참이 있는 곳에 들어섰던 공무 용도의 건축물이다. 그렇게 역참과 관련이 있는 시설을 역정(驛亭) 또는 정우(亭郵)라고 적었다. 정민(亭民)이라고 하면 역참 근처에 사는 일반인, 정사(亭舍)라고 하면 그곳의 객사(客舍)를 가리킨다. 역참을 지칭하는 다른 한자 置(치)와 어울려 정치(亭置)라는 단어의 조합도 얻었다. 아울러 이 글자는 진(秦)과 한(漢)나라 등 중국 고대 왕조의 말단을 이루는 행정단위로도 쓰였다.

산이나 계곡 위의 경치 좋은 곳에 멋지게 올라 앉아 있는 정자(亭子)는 아마 그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亭舍(정사), 驛亭(역정) 등의 ‘사람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뜻이 더 넓어지기 시작해 결국 좋은 경치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잠시 고단함을 풀며 쉬는 장소라는 뜻의 亭子(정자)가 나왔으리라는 추정이다.

아울러 사람을 가리키는 부수(部首)를 붙여 停(정)이라고 적는 글자는 ‘머물다’ ‘멈추다’를 의미한다. 이 글자 역시 ‘사람 쉬어가는 곳’의 亭(정)이라는 글자를 이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 쓰임새도 많은 이 글자의 대표 새김은 ‘정지(停止)하다’인데, 결국 亭(정)이라는 글자의 원래 뜻이 ‘머무는 곳’이었다는 점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가고 머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갈 때 가고, 머물 때 머물며, 멈출 때 잘 멈춰야 한다. 줄곧 길을 재촉하다 보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머물면서 쉬어가며, 하던 일을 멈추고 앞과 뒤를 다시 따지며 길을 나서야 좋다. 덕정(德亭)이라는 역명, 그리고 동네 이름은 그런 시각에서 풀면 좋겠다.

德(덕)은 길(道)을 나선 사람이 앞뒤를 잘 헤아리며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감에 필요한 실천적 지침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뒤에 亭(정)을 붙여 德亭(덕정)이라고 했으니, 가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옳게 헤아리자는 뜻으로도 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냥 ‘덕스러운 정자’라고 푸는 것보다는 운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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