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서당 개의 좌절
[이호영의 덕후철학] 서당 개의 좌절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04.2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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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개의 좋은 시절은 다 지났다고 한다. 그럼 어쩔까. 재능이 충만한 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탈출구는 어딜까.

한 때 1만 시간 법칙이 유행했다. 인지과학이나 뇌과학에서 지지하던 이론이다. 어떤 일이든 1만 시간을 꾸준히 연마하면 도가 통해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란 하루 여덟 시간씩 3년이 좀 넘는다. 꾸준히 한 3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TV에 나오는 달인들 모두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회, 노력하는 인간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론이다. 우리에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기분 좋게 해주는 ‘학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1만 시간 법칙이 틀렸다는 반론과 실험결과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결론은 두 가지다. “잘난 놈은 1만 시간이 아닌 1천 시간만 공들여도 바로 되더라”와 “못난 놈은 1만 시간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자질이 더 강력하다는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슬프다.

아직도 가끔은 정문에 “하면 된다”는 구호를 붙여 놓은 군부대도 있다. 신화적인 업적을 이룬 전 현대그룹의 총수 정주영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바로 이 신념으로 기업과 국가를 이끌었고, 국민들 역시 그 신념을 믿고 맨땅에 헤딩을 해댔다. 영화 <국제시장>이 누린 인기의 배경에도 “하면 된다”는 1970년대식 정서와 분위기가 넘쳐났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성실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끈기는 미덕이었다. 하지만 과학은 성실함이나 끈기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되면 하라”고 한다. 성실과 끈기가 이루어온 세상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에 질세라 성실 편에서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게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즐거움’과 ‘행복’을 은근 슬쩍 끌어 들인 것이다.

행복이 대세다. 그래서 즐거움과 행복 전략은 크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피할 수 없는 일은 아무리 즐기려 해도 즐겁지 않고 행복하려 해도 행복하지 않다. 당연하다. 즐거움과 행복이란 자발적인 참여로만 생겨난다. 내가 좋아서 해야만 즐겁고 행복하다. 피할 수 없는 것으로는 결코 즐겁지도 행복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의 사기성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

모든 서당 개가 풍월을 읊는 것은 아니다. 재능 없는 개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재능 없는 개라면 서당을 떠나 적성에 맞는 다른 분야를 개척할 때다. 사람도 그렇다. 노력 한다고 모두가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공부에서는 더하다. 10%미만의 사람만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한다. 1할의 확률을 위해 9할의 재능과 흥미를 포기해야 하는 세상 사람들은 얼굴조차 길고 우울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하면 된다”고 우격다짐하던 세월이 지났다. 이제 “되면 하라”거나 “되면 생각해 본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대 서당에서 좌절했다고 슬퍼하며 미련을 두지마라. 자질과 적성에도 맞고, 게다가 즐길만한 일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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