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02 17:50
바람이 불어닥치기 전의 여러 모습을 그린 중국 옛 그림이다. 바람은 풀을 눕게 한다. 그런 모습을 두고 풍미(風靡)라는 낱말을 만들었다. 바람이 많은 것을 휩쓸고 가는 상황을 가리킨다.

오늘은 바람 이야기다.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새바람…. 우선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순우리말 표현이다. 듣기에도 좋고 정에 겹기까지 하다. 뱃사람들이 표현했던 순우리말 바람 이름은 훨씬 다양하다. 예서 일일이 다 적기에 버거울 정도다.

기상청에서 분류한 바람 이름도 순우리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쉽고 편하다. 바람이 없는 상태를 ‘고요(calm)’로 적었고, 가벼운 상태를 실바람(light air), 그보다 조금 높은 것을 남실바람, 이어 산들바람, 건들바람, 흔들바람, 된바람으로 차츰 급을 높인다. 중국에서는 순서대로 적으면 無風(무풍), 軟風(연풍), 輕風(경풍), 和風(화풍), 淸風(청풍), 强風(강풍)이다.

이 정도까지의 바람이면 별로 피해가 없다. 그러나 센바람(near gale), 큰바람(gale) 뒤로 들어서면 걷기조차 곤란해지거나 걸을 수가 없을 정도에 이른다. 중국식 분류는 疾風(질풍), 大風(대풍)이다. 더 급수가 높아지면 이제 곧 재난에 가깝다. 큰센바람(strong gale)은 중국에서 烈風(열풍)으로 적는데, 우리식으로 이를 풀자면 ‘매서운 바람’이다. 건축물에 다소 손해가 미치는 정도다.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대바람은 한자로 狂風(광풍)이라고 적는다.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건축물에도 상당한 손해가 미친다. storm은 왕바람, 나아가 한자로는 暴風(폭풍)이다. 그 다음은 싹쓸바람이라고 해서 허리케인과 태풍(颱風)급의 바람이다. 더 높은 단계도 있지만, 그들을 표현할 때는 강(强)이나 초강(超强)이라는 수식을 허리케인과 태풍 앞에 붙이는 형식이다.

이는 공식적으로 정한 바람의 명칭이다. 그 말고도 전적(典籍) 등에 등장하는 바람의 이름은 부지기수다. 돌풍(突風)은 갑자기 불어 닥치는 바람이다. 선풍(旋風)은 회오리의 모습으로 솟구치는 바람, 양의 뿔처럼 말려 오른다고 해서 양각(羊角)으로도 적는다. 또는 그 모습을 형용한 한자어 扶搖(부요)로도 부른다. 뜨거운 바람은 炎風(염풍), 그 반대는 寒風(한풍), 매서운 바람은 厲風(여풍), 부드러운 바람은 融風(융풍)이다. 飇(표)와 狂飇(광표)는 큰 폭풍이다. ‘싹쓸바람’이 이에 속하겠다. 동남아 일대에서 불어 닥치는 태풍은 颶風(구풍)으로도 적었다.

센 바람이 닥치면 가장 먼저 눕는 게 풀이란다. 풀은 목본(木本) 식물에 비해 줏대가 약하다. 그래서 빨리 눕는다. 그런 바람과 풀의 모습을 한자로 적으면 풍미(風靡)다. 뒤의 글자 靡(미)는 여기서 ‘쓰러지다’의 새김이다. 바람이 닥쳐 풀이 눕는 모습에 딱 맞는 단어다.

이제 대통령의 이란 방문으로 우리사회에는 중동의 바람이 또 한 차례 불어닥칠 태세다. 바람 속에 묻어 있는 기회의 요소를 잘 잡아 우리 경제의 영양소로 삼으면 좋은 일이다. 그로써 경제적 잠재력이 강한 이란을 우리 경제 활성화의 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쏠림의 현상은 늘 주목해야 한다. 그 바람에 묻혀 해야 할 구조조정을 잊는다거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망각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거센 바람 앞에서 먼저 드러눕는 우리 사회 풍미(風靡)함의 속성은 매우 강하다. 장점도 엿보이지만 단점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바람은 어디서 어떻게 닥칠까….

 

<한자 풀이>

靡 (쓰러질 미, 갈 마): 쓰러지다. 쓰러뜨리다. 멸하다. 말다, 금지하다. 호사하다. 다하다. 물가. 갈다 (마).

疾 (병 질): 병, 질병. 괴로움, 아픔. 흠, 결점. 불구자. 높은 소리. 해독을 끼치는 것. 빨리, 급히, 신속하게. 앓다, 걸리다. 괴롭다, 괴로워하다.

飇 (폭풍 표): 폭풍. 회오리바람. 광풍. 폭풍 불어 올리다.

颶 (구풍 구): 구풍(회오리치면서 북상하는 급격한 바람). 맹렬한 폭풍.

 

<중국어&성어>

风(風)和日丽(麗) fēng hé rì lì: 바람은 고요하고 해는 밝은 상태. 아주 평화롭고 어려움이 사라진 상황을 일컫는다. 자주 쓰는 성어다.

风靡 fēng mǐ: 바람에 쓰러지는 풀. 우리의 용례와 같다.

疾风知劲(勁)草 jí fēng zhī jìng cǎo: 강한 바람이 불어야 질긴 풀을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의 성어다. “날이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꿋꿋함을 알 수 있다”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와 같은 맥락의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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