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03 13:54
동두천에 있는 왕방산에서는 국제 산악자전거(MTB) 대회가 열려 국내외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대회 참가자들이 경주하는 모습이다.<사진=동두천 시청 홈페이지>

조선시대 줄곧 양주군에 속해 있다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지금의 지명을 얻은 곳이다. 시내의 머리 부분이 동쪽을 향해 있다고 해서 동두천(東頭川)이라고 불리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지금의 동두천(東豆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왜 시냇물 이름에 콩을 뜻하는 豆(두)라는 글자를 붙였는지 자료를 찾아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동쪽에 발원지가 있어 붙은 동두천(東頭川)이라는 이름은 우리말을 붙여 ‘동두내’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고, 그를 대신해 언제 豆(두)라는 글자를 붙였는지에 관한 최초 기록은 조선 말에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東頭(동두)가 동두(東豆)로 바뀐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1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豆(두)라는 글자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편이다. 우선은 주요 먹거리로 삼는 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콩에 속하는 식물을 우리는 두류(豆類)라고 하는데, 대두(大豆)와 녹두(綠豆), 팥을 일컫는 홍두(紅豆) 등이 다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먹는 두부(豆腐)라는 음식도 그 바탕은 바로 콩이다.

그러니 여기서 콩을 언급하자면 끝이 없을 게다. 단지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에 얽힌 콩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자. 조조가 세상을 뜬 뒤 그 자리를 이어받아 결국 위(魏)나라를 세워 황제 자리에 오른 이는 조비다. 그는 그러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동생 조식이 마음에 걸렸다. 친형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존재로 봤던 것이다.

그러나 형제라서 마음대로 죽이기는 어려웠던 듯. 결국 어머니의 중재로 동생을 살려주지만 조건을 앞에 걸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동안 시 한 수를 지으라는 명령이었다. 문학적 재능이 워낙 탁월한 동생 조식은 결국 콩과 콩깍지를 주제로 시를 짓는다. 콩깍지가 타면서 솥에 들어 있는 콩이 익는 장면을 묘사했다. 시 일부를 아래에 적는다.

 

콩깍지는 솥 밑에서 타고요 萁在釜下燃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어요 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本是同根生

서둘러 없애려는 이유는 뭘까요 相煎何太急

 

판본(版本)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시의 내용은 대개 이와 같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두 구절이 아주 유명하다.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본시동근생, 상전하태급)’이라는 대목 말이다. 혈육끼리, 또는 같은 운명의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고 다투다가 결국 심한 경우에까지 치닫는 상황을 일컬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한자 성어다. 우리 쓰임새에서는 煮豆燃萁(자두연기)라고 줄여서 쓰기도 한다.

일곱 걸음 만에 이 내용이 들어가 있는 시를 만들어낸 조식은 결국 살았다. 아주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으나 그 조건을 완성한 동생을 죽일 수 없었겠고, 그 내용이 골육상쟁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어 조비로서도 느낀 바가 있었을 테다. 어쨌거나 그 일곱 걸음에 지은 시, 즉 칠보시(七步詩)는 조식의 천재성과 함께 동양 문단에서 줄곧 인구에 오르내리던 명작이다.

콩을 가리키는 다른 한자는 菽(숙)이다. 우리가 “저 사람 숙맥이야”라고 할 때 이 ‘숙맥’의 한자는 菽麥이다. 콩과 보리를 각각 일컫는다. 이 둘의 생김새가 완연히 다른데도 그 둘을 구분치 못하는 경우가 菽麥不辨(숙맥불변)인데, 우리가 ‘숙맥’이라고 사람 놀릴 때 쓰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 豆(두)가 콩이 아닌 경우를 영등포(永登浦)역에서 소개했다. ‘콩’이기에 앞서 이 豆(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그릇, 즉 제기(祭器)의 일종이었다. 받침대 위로 긴 목이 있고, 그 위에 물건을 올리게 그릇 형태로 만들어진 제기다. 보통 변두(籩豆)라고 적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형태지만 대나무로 만들었을 때는 籩(변), 그냥 나무로 만들었으면 豆(두)라고 했다는 설명이 있다. 조두(俎豆)라는 말도 있다. 일반적으로 제기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俎(조) 역시 제기의 일종이다. 편평한 받침대를 떠올리면 좋다. 보통 고기 등을 제사상에 올릴 때 쓰는 용기다. 이 俎(조)가 豆(두)와 만나 제사 때 쓰는 그릇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발전했다. 영등포의 지명에 등장하는 登(등)이라는 글자도 ‘오르다’라는 새김에 앞서 원래 제기를 가리키는 글자였다.

그래서 豆登(두등)이라고 적을 경우에도 역시 제기를 가리키는 단어다. 둘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한데, 앞의 豆(두)가 국이나 밥을 담을 수 있도록 안이 깊숙한 그릇 형태인데 비해 뒤의 登(등)은 편평한 형태로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든 제기라고 한다. 그래서 수확이 좋은 해에는 이 登(등)이라는 그릇에 물건을 많이 올릴 수 있어서 豐登(풍등)이라 했고, 결국 이는 풍년(豊年)을 가리키는 단어로 발전했다.

이들 말고도 고대 동양사회의 제기는 아주 다양하다. 각종 신(神)과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워낙 발달하다 보니까 그렇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앞에 잠깐 소개한 俎(조)는 우리가 자주 쓰는 성어에 등장하니 그 내용을 잠깐 덧붙이고 다음 역으로 넘어가자.

바로 조상육(俎上肉)이다. 여기서 俎(조)는 분명 제기의 일종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형태적 특징 때문에 ‘도마’를 지칭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조상육(俎上肉)이라는 성어는 따라서 ‘도마 위에 올라 있는 고기’라는 뜻이다. 곧 칼에 의해 잘리고 찢길 고기와 같은 신세라는 의미다. 남에게 이끌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 또는 그 상황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俎(조)라는 글자를 ‘도마’로만 생각할 때가 많지만 원래는 육류(肉類)와 생선을 올리는 제기다. 조상육(俎上肉)의 원전에서도 俎(조)라는 글자가 칼질을 하는 도마인지, 아니면 제사상에 고기를 올리는 용기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거나 조상육(俎上肉)의 신세에 이르면 좋을 게 결코 없다. 남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남이 시키는 대로 이끌려 가는 그런 경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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