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0.28 10:55

성을 쌓는 일, 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고 벌이는 작업이다. 한자 낱말로 적자면 축성(築城)이다. 이런 축성의 역사를 가장 길고 모질게 간직한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이른바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할 정도다.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중국 만리장성은 길이가 6300㎞다. 그 장성 서쪽 끝인 지아위관의 모습이다. /사진=조용철 전 중앙일보 기자.

만리(萬里)라고 적지만 실제 길이는 6300㎞다. 명나라에 들어서 새로 증축하거나 개축한 담의 길이다. 그러나 그 훨씬 전에 중국에 살던 사람들은 집요하게 담을 쌓아 왔다. 북방의 유목 제족(諸族)의 침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인을 비롯한 적지 않은 이들은 이 장성을 두고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문명성과 북방 초원 유목민족의 야만성을 가르는 경계로도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다. 요즘은 이런 상식적 수준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이를 크게 늘리고 있다. 2000년 들어 초반까지 공식적으로는 6300㎞이던 만리장성이 어느새 8800㎞로 늘더니, 요즘은 공식 길이를 2만1000㎞로 설명한다. 

마치 고무줄 늘리듯이 담의 길이가 늘어난다. 주변에 있는 모든 성벽의 흔적을 만리장성이라는 카테고리에 우겨서 집어넣은 결과다. 그러니 만리장성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길이를 지녔는지 헛갈린다. 중국에 쌓았던 담을 다 넣으면 어디 2만1000㎞에 그칠까. 중국식 우격다짐에 괜히 마음이 어지럽다. 

학술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만리장성은 반드시 방어용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만리장성 안쪽의 유적을 발굴해보면 대개 유목민족의 유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들어 중국의 만리장성이 원래는 유목 제족의 영토였던 곳을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가 지어졌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중국의 만리장성은 매우 공격적인 시설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담에 관한 상상은 요즘도 가능하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일부 산호초 섬에 비행장과 연구기지 등을 공격적으로 지은 뒤 이를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드디어 움직였다. 첨단 이지스함과 초계기 등을 띄워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를 통과했다. 무력시위다. ‘그곳이 당신들의 영해가 아니라 국제법을 적용하는 자유 통항 지역’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의 스탠스 문제다. 미국의 편을 들어야 하나, 아니면 시장이 큰 중국의 입장에 서야 하나.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비친다. 그러나 아니다. 중국은 바다 위에 새 만리장성을 쌓는 중이다. 중국 영토로부터 1000㎞ 이상 떨어진 그곳 일대를 중국 영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아주 많다.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90%, 대외 교역물자의 30% 이상이 그곳을 거쳐야 한다. 자유통항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우리도 중국에게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이룬 여러 가지 보편적인 룰이 깨짐으로써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 좋은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편에 서느냐를 따지기 전에 중국이라는 친구에게 선의의 충고를 잊어서는 곤란하다. 친구가 잘못 나아가는 경우를 경고하면서 그 잘못을 되돌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과의 여러 대화 창구는 활발히 가동 중이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폭 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인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고, 동북아 화해협력의 틀을 만들어가자는 차원에서 중국에게 여러 대화 창구를 통해 적극 충고를 건넬 필요가 있다. 

축성은 안전을 보장하지만, 사람이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만 머문다면 그 시야와 식견 등이 극히 좁아진다. 중국 문명이 오랜 세월 ‘만리장성’에 갇힘으로써 극히 폐쇄적이면서 자기만족적인 환경에 매몰했다가 서구의 열강에 호되게 당했다는 점도 함께 일깨워주면 더 좋겠다. 좋은 친구라면 그런 정도의 충고 정도는 해야 한다. 누구의 편에 서느냐는 그런 유치한 차원으로 지금의 상황을 저울질하면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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