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규의 한류 따라잡기] 중동에서의 한류-2
[오인규의 한류 따라잡기] 중동에서의 한류-2
  • 오인규 고려대 교수(한류학센터장)
  • 승인 2016.05.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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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과도 같은 인기를 끌어모았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 흔히 '대장금'이 중동에서 한류붐의 전부라고 이야기하지만 '꽃보다 남자' 등도 중동의 여심을 깊이 자극한 한류의 선봉이었다.

앞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중동의 여성들이 한류에 빠진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믿기 힘든 사실을 앞에 두고, 중동전문가들이나 한류전문 기자들은 중동의 문화와 한국문화가 유사하다느니, 사극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두르고 나오는 형상이 마치 중동 여성의 히잡과 유사해 한국 드라마가 중동에서 대박을 냈다는 낭설을 유포했다.

그러나 한국문화, 또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드러내는 유사점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대장금’ 같은 사극만 중동에서 대박이 난 것이 아니라, 이슬람 규율과는 어긋나는 ‘꽃 보다 남자’, ‘커피 프린스 1호점’,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현대극도 크게 유행했다.

영국이나 기타 유럽의 사극에서도 여성들이 베일을 두르고 나오는 것을 아는 독자들은 이 ‘베일 가설’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외대 아랍전문가인 서정민 교수가 누차 이야기 했듯이 중동은 우리보다 훨씬 전에 서방문명을 받아 들였고, 서양이나 할리우드 콘텐츠에 상당히 길들여져 있다. 그러면 이렇듯 서양문화에 중독된 중동여성들이 왜 한류에 빠졌을까?

서양 콘텐츠에는 없는 한 맺힌 신데렐라

중동의 젊은 한류 여성 팬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랍의 문화권이 서서히 분열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물론 쿠란이 전 아랍권에 보편적 종교규범으로 서슬 퍼렇게 군림하면서 상층문화와 대중문화를 조정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을 그렇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아랍권은 지역문화 혹은 나라별 고유문화에 의해 나뉘어져 있다.

이집트의 지역문화가 사우디의 지역문화와 상당히 다른 점이 이런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유입한 새 문화는 급속도로 전통 이슬람문화를 붕괴시키고 있다. 사우디 여성이 홀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율법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정작 나 홀로 해외여행을 하는 사우디 여성들이 제법 많다. 또한,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아버지나 남편 없이 나 홀로 해외여행을 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도 퍽 많다.

이러한 이슬람 문화의 지역적 차이는 역사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선, 이슬람 사회가 ‘성(性)’을 그토록 억압한 것은 19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아랍권 전체에 ‘성’의 자유가 너무나도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아랍권의 난잡한 성문화는 지배 권력을 갖고 있던 남성들을 위협할 정도였고, 급기야 이들은 성을 철저하게 억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남성들은 쿠란의 율법을 들이대 여자들을 베일 뒤로 감금했고, 성의 자유를 말소시켰던 것이다. 엘 페키의 명저 <성과 철벽성>에서 잘 나와 있듯이, 19세기까지 중동은 자유로운 성생활의 천국이었다. 심지어 남자 혹은 여자 간의 동성애도 묵인했고, 사회적으로 칭송을 받을 정도까지 타락했다. 이런 타락상을 중단하기 위해 20세기부터 철벽성을 쌓고 모든 성 행위와 성의 담론을 베일로 가리고 말았던 것이다.

성의 억압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불리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성의 자유가 여성을 해방했던 서양과 한국의 사례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차별 하에서의 여성들은 자신들과의 연대를 중요시하면서 서로 친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중동의 여인들은 주로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보다 더 자유로운 터키 여성들이 사랑을 하는 터키 드라마를 본다. 자신들보다 처지가 낫다고 보이는 터키 여성들이 우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며, 자신들의 신세 한탄과 불평을 같이 모인 다른 여성들과 나누는 것도 다반사가 된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젊은 아랍 여성들은 서양이나 터키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 ‘한 맺힌 신데렐라’ 스토리를 접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아랍 여성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국여성들이 다른 남성들과 경쟁을 뚫고 성공하는 스토리를 보게 된 것이다. ‘대장금’이나 당대의 여성들이 베일을 두르고 다녀서가 아니라, 성의 억압, 성차별, 신분차별을 뛰어 넘어 어의로 성공하는 대장금에게 아랍 여성들은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현대극에서도 삼순이와 같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희망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며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진정한 사랑도 성취하는 행복한 한국 현대 여성들도 중동의 여성에게는 새로운 영웅으로 비칠 수 있었던 셈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도 한 몫

앞서도 밝혔지만, 자신의 사회적 성공과 진정한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는 한 맺힌 신데렐라 스토리는 서양 콘텐츠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이다. 서양세계를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로 묘사하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다 같이 터부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때 장안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드라마 ‘미생’에서는 여주인공 안영이가 상사들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적 언행에 고생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회의실에서 분 냄새를 맡기 싫다”라든지 “단화를 신고 다녀”라는 등의 매우 악의적인 성차별 대사가 나와도, 여주인공 안영이는 열심히 일만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본이나 서양 드라마에서는 취급할 수 없는 대목들이다.

그러므로 한국 드라마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식민지와 동족상잔을 겪으면서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둔 한국. 그러나 여성 차별을 아직도 하는 나라. 이러한 차별을 받고 사는 한국 여성들이 한 맺힌 신데렐라로 우뚝 서서 성공을 거두는 내용이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에 중동의 젊은 여성 팬들은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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