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09 15:03
호수와 산이 보이는 풍경이다. 드넓은 자연은 가없는 자유를 연상케 한다. 그런 대지의 자연 속에서의 넓고 호방한 마음 경계를 드러낸 작품이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다.

한강 이북 지역에서는 명산(名山)인 소요산(逍遙山)이 있어 붙은 역명이다. 설명에 따르면 소요산은 한반도가 낳은 최고의 명승(名僧) 원효대사(元曉大師)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산에 있는 자재암(自在庵)에서 원효가 머물며 수행했다는 구전이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의 승려이자 사상가였다. 어느 한 구석에 맺히거나 머무는 바 없이 자유자재로 사상을 펼쳐 한반도 초기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가장 큰 위업을 쌓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머물면서 도를 닦았다는 자재(自在)의 암자도 역시 의미가 비슷하다. 어느 한 경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막힘과 맺힘이 없는 자유(自由)와 자재(自在)의 경계에 이를 수 있으니 말이다.

逍(소)라는 글자는 ‘걷다’, ‘달리다’라는 뜻을 지닌 책받침 부수에 肖(초)라는 글자가 합쳐진 경우다. 肖는 ‘닮다’라는 뜻이 있어 초상화(肖像畵)라는 단어로도 조합이 생기지만, 여기서는 점점 사라져 작아지는 모양을 일컫는다. 그러니 逍(소)는 모습이 작아질 정도로 멀리 다니는 행위를 가리킨다.

遙(요)라는 글자는 ‘멀다’의 새김이다. 아득히 멀다는 요원(遙遠), 멀리 바라본다는 요망(遙望) 등의 단어를 이룬다. 따라서 두 글자를 합친 逍遙(소요)라는 단어는 ‘멀리 나가 거니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가 이 단어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역시 逍遙(소요)라는 단어를 멀리 나가 거닌다는 뜻으로 썼다. 그러나 의미를 더 부여했다. 어디에 묶이거나 얽매이는 일이 없이 자유자재한 모습 또는 그런 행위 등의 뜻이다. 그로써 逍遙(소요)의 함의(含意)는 매우 깊은 차원으로 발전했다.

逍遙物外(소요물외)는 그런 단어를 넣어 만든 성어다. 멀리 거니는 곳이 사물(物)의 바깥(外)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사물’은 외형적인 조건이 가져 오는 얽매이거나 붙들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 즉 구속(拘束)을 뜻한다.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떠도는 경지를 일컫는다.

바람 쐬러 멀리 나가는 일이 소풍(逍風)이다. 한자의 순전한 조합으로는 다소 걸맞지 않으나 우리는 이 말을 자주 썼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 소풍에 열광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썼던 말이 원족(遠足)이다. 역시 ‘멀리 다닌다’의 뜻으로, 소풍과 같은 의미다.

우리는 바람을 쐬러 이렇게 멀리 다니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여유를 내서 소풍을 가고, 원족을 떠나는 일이 다 그렇다. 그러나 마음을 어디에 붙들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가며 먼 곳을 다녀야 정신 건강에 좋다. 그런 점을 소요(逍遙)라는 단어가 일깨운다. 마침 지하철 1호선 경기 북부의 끝 정거장이 소요산역이다.

어느 한 곳에 도착하면 우리의 시선은 다음 역을 향했다. 그러나 이 소요산역은 더 나아갈 길이 없는 마지막 종착역이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은 다시 그 너머를 본다. 늘 그렇지만, 한반도 허리가 갈라진 점이 못내 아쉽다. 이 전철의 선로는 예서 멈추지만 우리 마음은 그 너머를 본다. 逍遙(소요)라 逍遙(소요)라…. 우리가 나아갈 더 먼 곳의 경계는 어디인가. 멈추지 말고 늘 나아가 거닐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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