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10 10:09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두상이다. 그는 서양 인문학의 태두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진부함과 형식적 경직성을 타파하면 인문학은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연대 졸업식에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연대 나오면 뭐하니? 백순데!” 우리 인문학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풍경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인문학과 달리 우리사회의 인문은 지금 최전성기다.

사람들은 어떤 상품이나 사건 또는 생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그 이유를 댄다. 이 감정이나 이유에서 ‘가치’가 나온다. 가치는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가치가 바로 인문이다. 인간이 서로 부대낄 때 생기는 관계의 언어와 감성 그리고 판단이 인문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와 쇼핑몰이 있다. 사이트마다 사건 해설과 사용 후기(後記)가 올라오고 회원들 사이엔 늘 갑론을박이 오간다. 쇼핑몰에서는 구매한 물건마다 평이 올라온다. 그러니 우리사회에서 인문의 실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넌센스다.

동호회 특유의 댓글 문화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일베(일일베스트), 오유(오늘의 유머) 모두 디시인사이드(DCinside)라는 카메라 동호회의 갤러리에서 출발한 맹렬 ‘학파’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 최대의 인문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면 유통업자가 상품을 상점에 배급하고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한다. 자본주의의 흐름이 그렇다. 인문과 인문학의 관계도 유사한 꼴이다. 인문은 가치이고 인문학은 가치의 배급체계다.

인문학은 1차적으로 생산된 인간적인 가치를 분류하고 이를 다시 사회적인 체계와 논리적인 틀에 맞춰 가공한다. 여기서 인문학자는 가공업자다. 다음으로 상품이 지니는 가치의 역사적인 변화를 밝히고, 그를 정밀하게 묘사해 상품의 인간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이를 다시 인문학의 주요 분야인 문사철(文史哲)로 분류해 포장한다. 따라서 굳이 말하자면 가치의 포장이 인문학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모두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논문이나 책으로 유통한다. 그래서 인문학자란 유통업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상품은 생산도 소비도 없다. 신제품 광고 역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품의 뒤에는 인간적인 가치가 있기에 자본주의 역시도 지극히 인간적이다.

자본주의에서 인문학이 더 잘 팔려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문학은 개점 폐업 상태다. 서울대도 연대도 가치를 상실했기에 기업은 구매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인문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유통체계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적인 가치를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문학은 오래 전에 쳐놓은 그물이다. 종종 자연산 우럭이나 광어도 잡히지만 폐기된 어장이거나 쓸데없는 그물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신상품을 분류할 체계도, 포장해 유통할 판로도 없다. 그래서 우리 인문학은 위기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적이고 현재는 인문의 전성시대다. 옛 그물을 정리하고 새 어장을 개척한다면 인문학은 위기가 아니라 블루오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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