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0 17:01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정치가 정도전의 초상이다. 그를 기념하는 사당이 진위면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이 지명은 평택(平澤)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평택이 시를 이뤄 이곳을 안고 있는 형국이지만, 원래는 진위(振威)가 더 큰 행정구역으로 평택 일대를 대표하는 곳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振威(진위)라는 한자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각종 기록을 봐도 딱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가에 관한 설명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역시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벌였던 곳이어서 때로는 고구려, 때로는 백제 땅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고구려 장수왕 때 이곳을 차지하면서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이름이 붙는데, 다른 이름을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으나 이 釜山(부산) 하나만큼은 유독 눈길을 잡는다. 현재 대한민국 제1의 항구도시와 같은 이름이라서 그렇다.

釜山(부산)의 釜(부)는 솥을 의미하는 글자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어딘가 볼록 옛 무쇠 솥처럼 튀어나온 곳이 있어야 붙이는 법인데, 실제 이런 지형이 지금 진위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구려·백제의 시기를 지나 조선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도 한반도를 침략한 왜군과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明)나라 군대가 여기서 대접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강점기 전의 청일(淸日)전쟁에서도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이 큰 싸움을 벌인 곳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곳 역시 한반도 북부와 남부가 경합할 때 늘 전쟁이 번지던 지역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그 지명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떨치다’는 뜻의 진(振)과 위엄(威嚴)이나 위력(威力) 등의 새김으로 일종의 무력(武力)을 상징하는 위(威)가 붙은 데는 아무래도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정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그 가운데 振(진)을 먼저 살펴보자. 이 글자는 우선 같은 음의 震(진)이라는 글자와 헛갈리기 십상이다. 우리가 ‘진동’이라고 할 때 같은 음의 振動(진동)과 震動(진동)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비슷하다. 모두 ‘떨린다’의 새김이다. 그러나 구별하자면, 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앞의 振動(진동)은 인위적으로 또는 작위적으로 흔들릴 때 생기는 떨림이다. 앞에 손(手)을 가리키는 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뒤의 震動(진동)의 震(진)에는 비를 뜻하는 雨(우)의 부수가 붙었다. 원래 이 글자의 새김에 ‘벼락’과 ‘천둥’이 들어 있는 이유다. 따라서 같은 ‘떨림’이라고 해도, 이는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떨림’이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에서 우러나오는 ‘떨림’이다. 이를테면 땅의 떨림을 지진(地震)이라고 적을 때 등장하는 경우다.

진흥(振興)이라는 말은 한때 자주 썼던 단어다. 산업 등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떨쳐서(振) 일어나다(興)의 뜻이다. 진동(振動) 또한 자주 사용한다. 인위적인 동작에 의해 벌어지는 떨림이다. 진작(振作)이라고 적으면 ‘떨쳐서 일으켜 세우다’는 뜻이다. 특히 바닥으로 떨어진 사기(士氣) 등을 일으켜 세울 때 이 단어를 자주 쓴다. 떨림의 폭을 진폭(振幅)이라고 적는다.

부진(不振)이라는 단어도 흔히 쓴다. 성적이 영 시원치 않을 때 우리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학업도 그렇고,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모든 분야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올렸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떨침의 대상이 무력일 때 진무(振武), 진위(振威)를 쓸 수 있다. 앞은 상대보다 강한 무력을 선보이는 경우, 뒤는 위력을 펼쳐 보이는 경우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맹위(猛威)를 떨치다”가 바로 振威(진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振(진)과 震(진)의 구별이 늘 쉽지는 않다. 뇌가 크게 흔들리는 경우를 腦震蕩(뇌진탕)이라고 하는데, 엄격하게 따지면 腦振蕩(뇌진탕)이 옳을 법 하지만 우리 쓰임새는 腦震蕩(뇌진탕)이다. ‘크게 화를 내다’라고 할 때도 “진노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도 震怒라고 적는다. 아무래도 지진이나 천둥, 벼락 등으로부터 나오는 울림과 떨림의 크기가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振威(진위)의 다음 글자 威(위)는 쓰임새가 더 많다. 우선 위엄(威嚴)이다. 그리고 권위(權威)다. 모두 높게 있어 상대에게 두려움 등의 감정을 주는 글자다. 그런 두려움으로 남을 누르는 상황에서는 위압(威壓)이라는 단어를 쓴다. 위엄(威)으로 상대를 누르는(壓) 일이다. 위협(威脅)이라는 말도 있다. 왜 이 단어에서는 옆구리를 뜻하는 협(脅)을 썼을까.

그 옆구리는 사실 겨드랑이와 허리 사이의 공간을 지칭한다. 이곳이 사람에게는 급소(急所)에 해당한다. 제가 지닌 무력 등으로 상대의 그런 급소를 노리는 일이 바로 威脅(위협)이다. 위력(威力)이라는 단어도 있다. 그런 위엄, 권위 등이 지니는 힘이다. 두려움 그 자체로 보이는 힘이 위무(威武)다. 국군의 날 행사 때 우리는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위무도 당당하다”는 말을 쓴다. 그럴 때 등장하는 게 威武(위무)다.

아주 사나운 모습의 위엄, 권위, 힘 등을 우리는 맹위(猛威)라고 한다. 거세고 사납다는 뜻의 맹렬(猛烈)함을 가리키는 猛(맹)이 앞에 붙었다. 위신(威信)이라고 하면 그런 위엄이 뿜는 광채, 즉 위광(威光)과 남으로부터 믿음을 얻는 신망(信望)을 가리킨다. 아울러 威嚴(위엄)과 信用(신용)의 준말이기도 하다. 그런 두려움을 펼쳐 보이는 일이 시위(示威)다. 그런 일이 일정한 두께와 흐름을 형성하면 위세(威勢)다.

하마위(下馬威)라는 말이 있다. 말에서 내리면서 보이는 위엄이라는 뜻이다. 관리가 제 임지에 도착했을 때 말에서 내리면서부터 부리는 위엄이다. 처음부터 현지의 관리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행동이다. 그로부터 발전해, 이제는 초반부터 상대를 제압하고 들어가는 일을 가리킨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성어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여우(狐)가 호랑이(虎)의 위엄(威)을 빌리다(假)는 구성이다. ‘호랑이 없는 산의 여우’라는 식의 풀이도 가능하다. 남의 위엄을 마치 제 것인 양 빌려와서 그를 나쁘게 활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가짜 위엄은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 실력이 있어야 위엄이 우러나와 자연스레 그런 힘이 있는 모습, 즉 위용(威容)을 이루는 법. 진짜 실력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권위(權威)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위엄을 떨친다는 振威(진위)라는 역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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