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0 17:12
바다에 넘실대는 물결을 가리키는 한자가 파랑(波浪)이다. 바람에 일렁이면 풍랑, 그 정도가 거세면 우리는 그를 격랑으로 적는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 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 사랑은….” 이 노랫말 기억하는 분 적지 않을 테다. 1971년 일찍 생을 마감한 가수 배호의 노래 ‘파도’ 시작 부분이다.

오늘은 물결 이야기다. 그를 일컫는 한자 단어가 파랑(波浪)이다. 특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보통은 작은 물결이 波(파), 그보다는 큰 물결이 浪(랑)이다. 앞의 波(파)는 물을 가리키는 부수와 겉가죽을 의미하는 皮(피)의 합성이니, 물의 수면이 드러내는 모양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자 쓰임은 제법 많다. 우선은 바다 등에서 이는 물결이 파도(波濤), 물결의 모양을 이야기할 때는 파문(波紋), 그 길이와 높이를 나타낼 경우에는 파장(波長)과 파고(波高), 일반적인 물결을 파란(波瀾), 그 움직임은 파동(波動), 큰 물 지나간 뒤의 작은 물은 여파(餘波) 등으로 적는 식이다.

浪(랑)은 그보다는 조금 더 큰 물결이다. 정확한 자의(字意)는 짐작키 어렵다. 늑대를 가리키는 狼(랑)이라는 글자를 떠올려 그 동물의 꼬리의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물결이라 보는 견해가 있는데 분명치 않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풍랑(風浪), 억센 물결이 격랑(激浪)이다.

물은 움직이는 이미지다. 그래서 유랑(流浪)과 방랑(放浪) 등의 단어가 만들어진다. 물결 따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 유랑(流浪)이다. 방랑(放浪)은 그보다 정도가 좀 더 세다. 어떤 틀에도 구속을 받지 않으면서 떠도는 일이라고 보면 좋다. 물에 그저 떠다니면 부랑(浮浪)인데, 우리 쓰임새는 그리 좋지 않다. 부랑배(浮浪輩)가 곧 불량배(不良輩)니 말이다.

그와 관련해 생각해 볼 글자가 蕩(탕)이다. ‘흔들리다’ ‘움직이다’ 등의 뜻이 먼저다. 盪(탕)이라는 글자와 통용한다. 盪(탕)은 끓는 물(湯)이 그릇(皿)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우선은 ‘씻다’의 의미, 아울러 끓는 물의 불안정한 모습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蕩(탕)은 불안정성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글자 중의 하나다. 누군가에게 풀려나거나 쫓겨난다는 의미를 지닌 한자가 放(방)이다. 둘을 합치면 방탕(放蕩)인데, 얽매임 없이 아무 짓이나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나 쓰는 말이다. 헛물에 그런 짓을 한다면 바로 허랑방탕(虛浪放蕩)이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떠도는 자식을 탕아(蕩兒), 탕자(蕩子)라고 적는다. 원래의 ‘씻다’ 또는 ‘없애다’라는 새김이 얹혀 쓰이는 경우도 있다. 집의 재산을 써서 모두 없애는 행위는 탕진(蕩盡), 태워 없앤다는 의미를 보태면 분탕(焚蕩), 대상을 쓸어서 죄다 없애는 일은 소탕(掃蕩)이다.

다 어둡거나 무거운 뜻의 단어 행렬이다. 그러나 좋은 새김도 있다. 씻는 일은 물 등으로 대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세정(洗淨)의 의미를 지닌다. 탕평(蕩平)이라는 단어가 그런 경우다. 소탕(掃蕩)과 평정(平定)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심각하게 이익을 다투기 마련인 당쟁(黨爭) 등을 없애기 위해 시비를 잠재우는 일이다.

여야가 대립하는 우리 정치판에는 늘 파랑(波浪)이 인다. 국사를 다루는 자리이니만큼 나름대로 활발한 논의가 벌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모한 다툼으로 격랑(激浪)을 일으킬 일은 아니다. 총선을 거쳐 새로 출범하는 국회는 좁고 어두운 다툼의 틀을 벗어 탕평(蕩平)으로 나아가면서 조화를 꾀할 일이다. 

 

<한자 풀이>

波 (물결 파, 방죽 피): 물결. 진동하는 결. 흐름, 수류, 물갈래. 눈빛, 눈길. 눈의 영채. 은총, 혜택. 주름. 파임, 서법의 이름. 내 이름. 물결이 일다, 일어나다.

浪 (물결 랑, 물결 낭): 물결. 파도. 함부로. 마구. 물결이 일다. 표랑하다. 유랑하다. 눈물 흐르다. 방자하다. 방종하다. 터무니없다. 허망하다.

蕩 (방탕할 탕): 방탕하다. 방종하다. 흔들다. 움직이다. 방자하다. 광대하다, 넓고 크다. 헌걸차다. 용서하다.

盪 (씻을 탕): 씻다. 밀다, 밀어 움직이다. 갈마들다, 이동하다. 방종하다. 무릅쓰다. 흔들다, 진동하다. 소탕하다. 융합하다. 바르다, 칠하다.

 

<중국어&성어>

波浪 bō làng: 파랑. 물결.

放荡不羁(放蕩不羈) fàng dàng bù jī: 얽매임 없이(不羈) 마구 다니는(放蕩)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행위도 가리킨다.

倾家荡产(傾家蕩産) qīng jiā dàng chǎn: 집 기둥을 없애 기울게 만들고(傾家), 재산을 다 없앤다(蕩産)는 뜻이다. 파산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자주 쓰는 성어다.

动荡不安(動蕩不安) dòng dàng bù ān: 늘 흔들려(動蕩)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不安)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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