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0.28 15:10

교육기본법 6조 1항은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은 정치 세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국가 권력이 과도하게 교육과정에 개입하게 될 때 교육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교육기본법에도 이렇게 규정하고, 헌법에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현재의 교과서가 특정 정치 세력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 잡는 방법은 학문적 토론과 자유로운 선택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현재의 교과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다면 학문적으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질 높은 교과서를 제작해 공정 경쟁을 통해 선택받아야 한다. 그 과정이 답답하고 어렵다고 하여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강요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적 방식이 아니다.

이와 같은 발상의 근저에는 자신들만이 옳다는 독선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국민과 학자·교사들은 무지하거나 사악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사고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의견이 정말로 잘못되었다 해도 그것을 억압하는 행위는 여전히 악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탄압받는 의견이 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 인류를 대신하여 그 문제의 답을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 수단을 박탈할 권한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행한 일이지만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는 사실은 이론상으로는 늘 허용되지만 실제 판단에서는 중요시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탄식하다.

역사적 비극은 바로 이러한 점을 망각한 권력자의 독선적 사고에서 자주 일어나고,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우리 사회의 원리로 채택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는 특히 학문과 교육에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학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와 교육자들의 양심에 기초한 자유로운 연구와 토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심판이 심판의 역할을 벗어나 직접 한 편을 들겠다고 나선다면 게임이 성립될 수 없다.

현 정부의 무리수는 역사교과서 적용 시점에서도 나타난다. 2015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점이 2018년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적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근거를 개정 교육과정에 두고 있다. 이런 명백한 자기모순을 강행하는 이유가 대관절 무엇인가?

현재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건 국가 권력이 자신들의 정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하여 교육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권력에 예속될 때 교사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된다.

교육공무원은 현재 정당 가입이 제한될 만큼 엄격하게 정치적 독립성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당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으며, 그들의 의도대로 교육과정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사로 하여금 특정 정치 세력의 이념을 선전하도록 강요하는 것이고,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흔드는 행위다.

지금까지 교육자로서의 양심과 학문의 진실에 바탕을 두고 묵묵히 교실을 지켜온 현장 교사들은 교육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침해하는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낀다.

좋은교사운동에 뜻을 함께 하며 활동하는 1017명의 교사들이 실명을 밝히며 특정 정치 세력의 입장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교육과정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고 교사에게 주어진 교권을 지킬 것임을 선언했다. 좋은교사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교사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건 우리의 교육권이 특정 정치 세력에 복무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많은 일선 교사들은 다음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로서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주는 일과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 가는데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교과서를 마치 경전인 것처럼 떠받든 측면이 있었다. 교과서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것과 다른 학문적 입장도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합당한 태도다. 우리는 이런 노력에 힘을 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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