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규의 한류 따라잡기]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
[오인규의 한류 따라잡기]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
  • 오인규 고려대 교수(한류학센터장)
  • 승인 2016.05.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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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제작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인도차이나'의 포스터. 식민지 동남아 역사무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작품이다.

일본, 중국, 중동에서의 한류를 언급하는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지역을 망라하는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도나 기타 남아시아 지역과는 현저하게 달리, 중국이나 동아시아의 문명에 가장 가까운 지역이 동남아시아이다.

이 지역에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를 포함해서, 언어는 같지만 문화가 많이 다른 또 다른 대형 이슬람국가 말레이시아, 그리고 오랫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받아왔던 ‘동양의 진주’ 필리핀이 자리하고 있으며, 전후 현대사의 최대 이슈였던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세계사 최초로 미국, 영연방, 프랑스, 한국 등과 정면으로 싸워서 민족해방을 쟁취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가 있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과 같이 왕정 독립을 유지했던 동남아의 꺼지지 않는 제국 태국이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허덕이던 미얀마와 이웃하고 있다. 이슬람과 불교가 정면충돌하는 동남아시아는 오랫동안 서양의 문명과 교류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는 거대한 화교 벨트가 형성돼 유교문명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으로 포진하고 있다. 즉, 전 세계의 종교문명이 동남아 지역문화와 함께 녹아 있는 곳이 동남아시아라고 할 수 있다.

전근대의 글로벌 해상무역왕국–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이러한 다문화 전통은 바로 해상 실크로드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역사학자 안다야 교수의 저서 <말루쿠 왕국의 세계>에 따르면 고대 해상 실크로드는 중동,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차이나, 광동, 복건, 대만, 류큐, 큐슈, 제주, 부산을 연결하는 광대한 바닷길이었다. 이 통로를 거쳐 철, 동, 금, 은, 향신료, 그리고 무기가 대량 거래됐다.

따라서 동남아의 제 왕조는 중동과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왕국을 건설해 내지에서 생산된 금, 은, 철, 동, 향신료를 중국의 비단과 차, 그리고 무기와 교환하고, 그것을 다시 중동의 상인들에게 되팔아 이중 이익을 챙기는 중개무역과 구상무역의 주재자였다.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음은 물론이다.

부와 종교가 합쳐지면 의식이 성행하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댄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무용의 한 장르이며, 태국 음식은 전 세계를 석권할 정도로 향신료를 듬뿍 쓰는 세계 최초의 향료 중심 음식 장르를 일찍 개척했다.

미얀마, 태국, 라오스의 대형 사원에는 아직도 순금으로 도배한 대형 불상들이 수 없이 존재하며, 그 대형 불상들 앞에는 순례객들을 위한 공연장과 간이 음식점 그리고 바자르 등이 줄지어 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대형 모스크들은 인도의 타지마할과 견줄만하다.

특히, 동남아 최대 규모의 이스틱랄 모스크는 그 규모가 너무나 웅장하여 마치 베르사유 궁전을 보는 듯하고, 그 주위에는 과거 엄청난 규모의 공연시설과, 음식점, 그리고 국제 무역 시장이 발달해 있었다.

포르투갈의 점령과 동남아 문명의 막장

영국육군의 홍콩 주재 수석정보장교였으면서, 저명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해상역사가였던 전 런던 소아즈(SOAS)대학 복서(Boxer) 교수는 그의 저서 <동남아시아에서의 포르투갈의 정복과 상업: 1500-1750>에서 명쾌하게 주장하였듯이,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동남아시아 해상왕국이 운영하던 평화적 글로벌 자유무역체제를 악랄한 무력으로 짓밟고 파괴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해상왕국의 왕들이 이러한 위험을 간과한 것은 아니나, 워낙 자유주의적인 무역체제를 운영하다 보니 외국인들의 왕래가 너무나 빈번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군사적 방위를 맡았던 해군들 중 외국인 장교들이 많이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의 해군이나 해적들이 들어와도 제대로 방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되어 총의 방아쇠를 역으로 동남아시아의 왕들에게 겨누었던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 근대 해상실크로드를 동남아시아로부터 강제로 인수 받은 후, 향신료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과 동시에, 멕시코에서 대량 유입된 은과 같이 유럽 각지에서 가격혁명을 일으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격혁명은 더 많은 유럽의 상인과 해적이 동남아시아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고, 더 많은 식민지가 곳곳에 건설되었음은 제국주의 침략의 악순환의 한 예로 생생히 남아있다. 즉, 서양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동남아시아는 더욱 더 비참히 착취당했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종막과 한류의 등장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독립되지 못하고 이른바 ‘민족해방전쟁’에 돌입하는 비운을 맞는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는 일본과 결성했던 대동아공영권이 1945년에 무너지자 바로 독립을 선포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다시 입성한 네덜란드 제국정부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결국 힘들게 독립을 쟁취한 것이 1949년 12월이었다. 필리핀과 미얀마는 각각 미국과 영국의 덕택으로 전쟁 없이 1946년과 이듬해 독립했지만(미얀마에서는 영국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아웅산의 암살발발), 문제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포함)와 인도차이나였다.

말레시아는 종전 후 극심한 좌우 대립과 이슬람-화교 간의 갈등을 겪었다. 또한, 말레이시아 연방의 성립으로 북 보르네오 및 사라와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던 인도네시아 및 필리핀과 반목하면서 결국 전쟁을 치러야 했다.

말레시아의 독립은 1963년에나 가능했고, 이 해에 싱가포르와 북 보르네오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처참한 독립전쟁을 벌인 곳이 프랑스령의 인도차이나였다. 인도차이나 해방전쟁으로 남 베트남 측에 17개국의 참전과 후원국이 나섰고, 북 베트남 측에 12개국의 참전 또는 후원국이 나서서 1946년부터 1975년까지 30년간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남북 합해서 400만 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명실 공히 20세기 최대의 끔찍한 전쟁이었다. 결국 모든 인도차이나는 1975년 완전독립을 쟁취하는가 싶었으나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루즈에 의한 인민 대량학살이 벌어졌다. 베트남 또한 다시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제국주의의 종막은 동남아시아에서 장기적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미국, 일본의 제국주의 문화가 시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대신에 이슬람이나 지역문화가 다시 발흥함과 동시에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하는 화교문화, 그리고 지구상의 새로운 21세기 문화로 떠오르는 한류가 이 지역에 새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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