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12 09:36
트럼프 지지자들이 내건 선전 문구다. 트럼프는 미국 백인사회의 심리적 상실감을 파고들어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 성소수자 차별에 막무가내 국제정치까지 막말로 점철하고 있는 비도덕적 ‘막가파’가 도널드 트럼프다. 전 세계가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를 비난하고,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까지 매도한다. 그의 인기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의 입장을 헤아려본다면 그림은 전혀 다르다.

따져 보면 트럼프의 주장은 평균적인 한국 보수 수준이다. 그의 주장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지금껏 차마 꺼내지 못하던 미국 백인의 심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중상층 백인에게 있어서 사이다와 같은 청량감을 주고 있다. 트럼프의 인기를 미국인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미국이 이기적이라 여기지만 미국인들 생각은 다르다. 미국인들은 스스로 정의로우며 항상 타인을 배려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다른 나라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국제 무대의 사정에 맞게 조정해 왔다고 자부한다. 심지어는 코딱지만 못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시달려도 직접적으로 행동을 못하는 게 미국이다.

하지만 뭘 해도 불공평하게 약소국을 힘으로 누른다는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종교차별로 트럼프를 비난한다. 자기 종교는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 비난이라니! 말도 아니다. 지금껏 미국은 힘 있고 돈 있기에 갑(甲)이었다. 강자는 약자의 도덕적 공격에 무방비하다. 따라서 갑이란 달리 말하면 도덕적인 약자다. 미국은 자기 식으로 나름 도와주려고 노력했지만 “갑질하는 나쁜 놈”이라는 욕이나 들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갑질과 성추행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지름길이 훨씬 많다. 특히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갑질과 성추행 외에도 인종, 종교, 성까지 금기는 수두룩하다. 백인은 백인이라 불러도 되지만 흑인을 흑인이라고 하는 순간 파멸이다. 황인종을 황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민족 국가에서 인종 문제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면 답이 없다.

또한 미국은 개신교 위에 세워진 국가다. 하지만 매일 중동의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인 목을 잘라 유튜브에 올려도 이슬람을 비난하면 곧장 파멸이다. 테러리스트와 외국인 범죄에 그렇게 당해도 외국인 차별이 담긴 발언을 한다면 그 또한 황천길로 직행한다. 개신교 교리에서 말하는 성윤리나 남녀문제를 말해도 매장이다.

모두 도덕적인 비난이다. 이를 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껏 도덕적이라 굳게 믿어온 전통의 많은 부분이 부도덕한 셈이다. 전통적으로 살면 저절로 죄인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미국을 지탱하는 중심축인 ‘개신교를 믿는 백인 앵글로 색슨(WASP)’의 신념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그러니 안팎으로 치여 짜증나고 피곤해 못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지자의 심정이 이것이고 트럼프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든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대선 후보를 다른 나라가 그렇게 비난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우리 전통적인 가치가 무참히 비난당하고 짓밟히면 참을 수 있을까? 미국도 전통적 가치로 지탱되는 사회다. 따라서 미국의 전통적 가치가 부정당할 때 미국인들은 결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 역시 폭발 일보직전일 수 있다. 트럼프는 바로 그런 미국 백인의 느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슈퍼 파워를 이룬 근저에 흐르는 이해와 관용, 혼융과 단결의 가치는 여전하다. 감성의 어두운 그늘을 파고드는 트럼프의 막말 도발이 과연 이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에 무너진다면 미국은 이전까지 보여 왔던 역사상 가장 관용적인 슈퍼 파워의 위상을 잃을지 모른다. 세계는 지금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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