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2 16:39
지하철 1호선 송탄역에서 괜히 1970년대의 가요 '빈 의자'(장재남 노래)가 떠오른다. 석탄 등을 일컫는 탄(炭)이라는 글자는 날씨가 차가워진 뒤 따뜻함을 남에게 선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송장현(松莊縣)과 탄현(炭縣)의 두 지명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은 앞에서 소개한 진위(振威)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 때 일찌감치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나중에 진위현과 송장현으로 남은 뒤 다시 송장현과 탄현을 합쳐 송탄(松炭)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 시기는 1914년 일제강점기 초반의 행정구역 개편 때라는 것이다.

소나무를 가리키는 松(송)이라는 글자에 대해서는 송내(松內)역을 지날 때 이미 풀었다.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는 아름다운 자태의 소나무에 관한 설명 말이다. 험하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아울러 기름진 곳에서 살다가 다른 식생(植生)에 자리를 잘 비켜주는 그 덕목도 그때 덧붙였다.

그러니 여기서는 다음 글자 탄(炭)으로 눈길을 향해보자. 이 글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우선은 석탄(石炭)을 가리키는 한자다. 지질시대 땅에서 자라난 식물, 또는 물에서 자란 식물 등이 퇴적의 과정을 거쳐 땅에 묻힌 뒤 열과 압력에 의해 변질하면서 만들어진 흑갈색의 가연성(可燃性) 암석을 이른다.

일반적인 연료로 사용하는 탄을 매탄(煤炭)이라고 부르며, 색깔에 따라서는 갈탄(褐炭)과 흑탄(黑炭) 등으로도 부른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로 따질 때 탄소 함량이 60%일 경우에는 이탄(泥炭), 70%일 때는 아탄(亞炭) 또는 갈탄, 80~90%일 때는 역청탄(瀝靑炭) 또는 흑탄, 95%일 때는 무연탄(無煙炭)으로 구분한다.

그런 암석으로서의 가연성을 띤 연료 말고 목탄(木炭)으로 부르는 게 있다. 바로 숯이다. 참나무 등을 불완전하게 연소시킨 뒤 사용하는 게 숯이다. 木炭(목탄)으로 적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숯’이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는 존재다. 연탄(煉炭)도 그런 과정을 거쳐 가정 난방용으로 우리가 즐겨 썼던 연료다.

도탄(塗炭)이라는 말도 있다. ‘민생(民生)이 도탄에 빠졌다’라는 식의 표현에 등장하는 말인데, 앞의 塗(도)는 진흙이나 뻘 등을 가리키는 글자다. 수렁이라는 단어에도 해당한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거나 걸어 다니기가 쉽지 않은 장소 또는 길이다. 뒤의 炭(탄)은 목탄이나 석탄 등이 타고 있는 불구덩이다. 둘 다 견디기 힘든 상황 또는 장소를 가리킨다.

민생이란 게 뭔가. 일반 사람들의 살림살이다. 그런 경제적 여건이 塗炭(도탄)에 빠졌다는 것은 의미가 분명해진다. 아주 어려운 살림살이, 하루 살아가기가 아주 벅찬 궁핍한 상황을 일컫는다. 참고로, 塗(도)라는 글자와 관련해서 쓰이는 성어가 있다. 일패도지(一敗塗地)와 간뇌도지(肝腦塗地)다.

앞의 一敗塗地(일패도지)는 한 차례(一) 패배(敗)로 땅바닥(地)에 뒹구는(塗) 경우를 뜻한다. 뒷부분의 도지(塗地)라는 단어가 문제인데, 성어로 뒤에 나열한 肝腦塗地(간뇌도지)가 그를 보충하는 말이다. 전쟁에서 패배하며 목숨을 잃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그 경우가 참혹하다. 간(肝)과 뇌(腦)가 땅을 물들인다(塗)는 뜻이다. 여기서 塗(도)는 단순히 진흙의 의미를 넘어 ‘색 등을 바르다’는 뜻의 도색(塗色)이라는 의미다.

다 고생스러운 삶과 살벌한 전쟁의 이야기다.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 바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 탄을 보내준다는 의미의 ‘설중송탄(雪中送炭)’이다. 눈(雪) 속(中)을 지나 가난과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탄(炭)을 보내준다(送)는 뜻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차가움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온기를 보태는 자비(慈悲)의 손길이다.

그 送炭(송탄)과 같은 발음이 松炭(송탄)이다. 松炭(송탄)이 비록 이름 다른 두 현을 합치면서 만든 지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松炭(송탄)이 늘 그 送炭(송탄)이었으면 좋겠다. 남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으며, 塗炭(도탄)에 빠진 이웃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그런 ‘송탄’ 말이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의자가 돼 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을 편히 쉬게 하리다~”라는 구절의 노래 ‘빈 의자’(장재남 노래/ 1978)가 생각이 난다. 빈 의자까지는 아니라도, 누군가 몸이 시려 다가올 때 불을 쬐던 우리 모두 얼른 곁을 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사회라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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