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5.13 13:25
윤주진 뉴미디어 에디터

13일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안중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가 갑자기 포털 사이트에 등장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알고 보니 유명 걸그룹 소속이자 최근 전국민적으로 인기가 높은 연예인과 관련이 있었다. 그룹 AOA의 멤버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논란이 된 것이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논란이 된 두 연예인이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역사 퀴즈를 푸는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보고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어 발음)’이 아니냐고 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역사 상식이 부족하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많은 언론들이 ‘네티즌 반응’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는 ‘설현 안중근 논란’으로 도배됐다. 급기야 설현과 지민은 공식 사과까지 했다. “무지가 큰 잘못임을 배웠다”며 “이번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깊이 죄송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첫째 왜 연예인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지, 둘째 그걸 몰랐다고 비판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을 왜 언론이 앞다퉈 보도해야 하는지, 셋째 그 보도에 굴복해 해당 연예인이 결국 ‘무식해서 죄송하다’라는 사과문을 올려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우려를 느끼는 대목은 두 번째다. 일반 국민들이라면 당연히 연예인의 역사 상식 부족을 문제 삼으며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여론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론들은 마치 대단한 사건이라도 터진 듯 앞다퉈 기사를 내보냈고,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에는 수백 건의 ‘설현 안중근’ 기사가 도배됐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구조적 차원의 악순환의 고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언론이 양질의 콘텐츠와 기사로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니라 포털 또는 SNS에서 ‘클릭수’를 높여 돈을 버는 시대가 낳은 풍경이다. 군소 매체만의 사정이 아니다. 대한민국보다 더 먼저 탄생한 전통 매체들도 ‘온라인뉴스팀’은 24시간 클릭수 전쟁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언론들에게 설현이 안중근 의사를 몰라본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지를 따져볼 여유가 없다. 일단 무엇이든 쓰고, 클릭을 끌어 들여야 되는 언론의 조급증에 의해 안중근 의사를 몰라본 연예인은 잘못을 저지른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편 “네티즌들이 설현에 대해 극도로 불쾌해하고 있다”고 보도한 모 언론의 홈페이지는 마치 성인 사이트를 방불케 하는 선정성 광고가 가득했다. 그런 언론들의 집단적 보도로 순식간에 무식한 사람, 매국노로 몰린 연예인은 공식 사과를 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 같은 구태가 반복되어야 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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